명백한 타의,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나의 의지라고는 전혀 관여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건 정확히 그 후부터다.
누군가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확실히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중하위권보단 상위권에게, 단순한 능력을 넘어 재능 이상의 수준까지 도달한 이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게 다반사니.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상대평가 속에서 허우적대는 건 다름 아닌 생존 본능인 것이다.
기특한 하루, 단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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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는 데엔 이유가 있다. 결이 비슷해서,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있는 존재에게 눈길이 간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라는 영화를 본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늦깎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이즈카는 멀쩡히 회사에 다니는 와중에 돌연 무단 퇴사를 한다. 어딘가 답답하고 온몸에 긴장이 서려 있는 듯한 모습이 눈꼴사납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건 상대에게서 자신의 약한 모습이 비춰 보이기 때문이라는데, 아무래도 그녀에게서 잔뜩 쪼그라진 자신감을 엿본 것 같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주위에서 툭 던진 말을 잘 주워 담는다. 그러고선 조용한 곳에서 다시금 꺼내 곱씹어 보곤 하는데, 그중 간혹 마음을 움직일 만큼 영향력 있는 것이 있다. 이이즈카가 편의점 야간 근무 중에 동료에게서 들은 한 문장이 딱 그럴 것이다.
"늘 생각하거든요. 나 자신이 기특하다고."
이이즈카보다 동생인 동료가 이제껏 꿈이나 목표가 없었다는 그녀에게 나지막한 한 방을 날린다. 매일 아침 눈떠서 학교에 가고, 이렇게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게 느껴진다는 당찬 어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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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즈카의 동료의 말을 곱씹어 본다.
어쩌면 지금껏 기특함의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지 않았을까. 혼자 오해하고선 툴툴대고 서투르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고. 기특하다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포장해 억지스럽고도 강요스러운, 다그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 6시 반에 눈을 뜨고, 샐러드 조금과 땅콩잼을 가득 바른 토스트를 먹은 후 지하철에 몸을 실어 일터로 향한다. 늦가을의 태양은 천천히 떠오른다. 6개의 정거장을 거친 후 지상에 발을 디딜 때쯤 눈높이가 엇비슷해진다. 땅과 하늘 그 사이, 어중간히 걸쳐있는 태양에 반사돼 속눈썹 끝자락에 맺힌 빛 방울을 보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침잠이 많지만 알람 소리에 일어난 것, 약소하더라도 끼니를 챙겨 먹은 것,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발걸음을 향한 것. 어쩌면 이미 기특한 하루가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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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문장을 주워 담는다.
'칭찬받은 동물은 더 빨리 배우고, 훨씬 효과적으로 배운 것을 습득한다.'
이이즈카의 동료가 당찬 하루를 보내는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거다. 자기 자신을 기특하게 대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 확실하게 하는 것만이 세상을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테니. 꾸준함과 성실함 아래에서 자라날 모종의 말을 마음 한편에 심어 본다.
이이즈카의 하루를 응원하게 된다.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그녀가 잘 살아내준다면 덩달아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 다운 방식으로, 나다운 방식으로 나름의 기특한 하루를 보내길 빌게 된다.
오늘도 여러 형태의 기특한 하루가 세상 가득 흘러간다. 그런 하루를 무사히 마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