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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담 Apr 21. 2024

여행 같은 나날을 꿈꾸며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오랜만에 맞이한 한국의 주말,
집에 들어가기 아까운 날씨였다.


지난주 이 시간에는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을 공허하게 만든다.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아쉬워하던 나에게 해줬던
민이의 허무맹랑한 조언을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그래, 외국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행 중이라고 생각해 보자.


집을 코앞에 두고 방향을 틀었다.
어딘가에 가야겠다라기보다는
그냥 목적 없이 방황했다.
골목골목에 들어가 보고,
발끝보다 앞선 시야를 따라 걸었다.


여기에 이런 게 있구나,
이게 여기에 있었네.


매번 지나치던 카페와 서점,
누구보다도 그곳까지의
최단거리를 빠삭하게 알고 있다.
지도가 알려준 대로 사거리에서 쭉 직진하다가
교회가 하나 나올 때 좌회전하면 금방인데,
내 멋대로 우회전을 해보니
익숙함을 벗어나는 건 한순간이다.


여태까지 지도가 설계한
세상 속에서 살았던 걸까.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인 트루먼이
자신이 살아가던 가짜 세계를 벗어났을 때
이런 짜릿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어딘지 모를 거리를 40분가량
걷다 보니 낯익은 풍경이 나왔다.
예상치도 못하게 맞이한지라
뭐랄까 안심된다고 해야 될까,
아니면 반갑다고 해야 되나.
그렇다고 또 마냥 친숙하지만은 않다.
평소라면 큰길을 따라 들어섰겠지만
이번만큼은 길 옆구리에서
툭하고 튀어나왔으니까.
앞모습과 옆모습은 엄연히 다르다.



나고 자란 동네의 옆모습을 본다.
담벼락에 자리 잡은 나무라든가,
가지런히 세워진 자전거의 뒷바퀴,
수풀 사이에 꽂아진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날씨도 덥겠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눈앞에 보이는 아무 카페에 들어섰다.
주문한 카페라떼 한 잔에
쌀 과자 하나와 곰돌이 모양 젤리까지,
사장님의 후한 인심이 딸려온다.


"잘 지내셨죠?"


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사장님,
고개를 들더니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으신다.
아무래도 가게 앞에 유모차를 주차한
이란성 쌍둥이네 가족이 여기 단골인가 보다.


쑥스러움을 반쪽이나마 가려보겠다고
엄마의 다리를 부둥켜안아 빼꼼 숨는 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꿋꿋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난다.


아, 생각났나.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화려한 건물이나 맛있는 음식이 아닌
공원에서 산책하던 연인과
마트에서 장을 보던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 냄새 폴폴 나던 어느 일상이었음을.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소소한 하루가
그때 느낀 설렘과 닮아 보인다.


당장의 내일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인생이 여행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언제 어디서 마주할지 모를 크고 작은 나날을
하나의 여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카페라떼 때문인지
민이의 처방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한 여행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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