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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5년 전 유물 발굴, 2014년 취준생의 대학 수업 과제 1

by 아보카도

꿈만큼이나 달콤한 것이 상상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최근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의 취미는 이토록 달콤하다고 여겨지는 상상이다. 소심한 월터가 대담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자신의 상상 속에서였다. 그런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를 위해 마지막에 쓰여야 할 표지 사진이 사라진 것이다. 사진을 찾지 못하면 해고될 위기에 처한 월터는 행방불명의 사진작가를 찾아 아이슬란드로 떠나게 된다. 이 곳 저곳 종횡무진하며 쏘다니는 사진작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월터는 난생처음 헬기를 타다가 바다에 떨어져도 보고 폭발 직전인 화산도 피하며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 사진작가를 찾아 헤매는 동안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월터는 자신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면서 월터는 상상을 일삼기보다는 현실에 더 자신감을 두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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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직장인의 모습은 월터가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일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체크하고 퇴근 직전까지 열성적으로 일하다 보면 어느새 해는 저물어 있고 못다 한 업무를 다 끝내려 하다 보니 야근은 필수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은 일에 파묻혀 사는 회사원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쫓는 곳을 향해 달리다 보니 회사원이 되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쫓는 곳. 그곳은 과연 올바른 곳일까. 올바름이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와의 대화를 통해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도 전에 그것이 ‘나쁨이며 무지인가’ 아니면 ‘지혜이며 훌륭함인가’ 하는 데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이러한 우선순위로 인해, 플라톤은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즉,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훌륭하고 지혜롭고 좋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판별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월터와도 같다. 어렸을 때의 꿈은 직장에 들어감과 동시에 과거가 되고 시간은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겨를도 없다. 이는 비단 직장인만의 일이 아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것을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는다. 국어, 영어, 수학 성적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불철주야로 문제집을 풀고 또 풀뿐이다. 수능 적중률이 높은 족집게 강사를 찾아가 과외를 받는가 하면 내 점수를 십 점이라도 올려줄 인기강사의 현장 강의를 듣기 위해 아침부터 줄 서서 학원 등록을 하기도 한다. 나의 지난 19년간의 삶 역시 그랬다. 그리고 나 역시 남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 대학이라는 곳에 가면, 문제를 풀고 또 틀린 문제를 반복해서 보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달달 외우는 기계적인 생활은 나의 삶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학은 사회라는 곳을 향하기 직전에 들르는 곳일 뿐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에 비해 자유는 주어졌다. 그러나 책임지지 못할 자유는 방종과 다를 바 없었고, 자유를 과감히 행사할 정도의 패기와 심적 여유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입학할 때부터 스펙 쌓기라는 미션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제의 수능 성적 대신 오늘의 학점을 관리해야 했고 해외봉사활동, 교환학생, 동아리 활동, 학회 활동, 공모전 수상경력 등의 스펙을 하나둘씩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원서를 써 볼 수 있었고 끈질긴 노력 끝에 최종 합격을 거머쥘 수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20대를 위해, 서점에는 ‘20대 자기 계발에 미쳐라 :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과 같은 자기 계발서가 범람했다. 대학 4년 동안 우리가 해야 하는 자기 계발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하지 않으면 4년 후가 불안한 것이었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공모전 준비 또한 열심히 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하기 직전부터 많은 학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사회가 정해준 스펙들을 하나 둘 쌓아가고 있었다. 사회가 인정한 직업들을 갖기 위해 사회가 정해준 스펙들을 쌓아가는 이들이 득실거리는 곳, 그곳이 바로 대학이었다. 사회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다는 각자의 길을 가기에 바쁜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대학이었다. 사회에 나가기 직전의 대학에서조차 근본적인 나에 대한 탐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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