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전화라도 주시고 오시지. 예, 그게. 갑자기 질문을 하시니까요. 맞아요, 친구 집에 간 적이 있었어요. 말씀드렸어야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됐네요. 특별한 거 없었고요. 어떤 일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생각은 잘 안 나는데.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친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요. 본보기? 본보기였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그렇죠, 석 달 됐을 거예요. 남편 분이 계시더라고요, 꽤 보수적이라고 느꼈어요. 면전에서 적의를 드러내더라고요. 그렇게 반응하니까 짜증 났죠. 뭔 얘기를 했겠어요. 그냥 나왔죠. 친구는 몰랐던 거 같아요. 저는 말한 적이 없거든요. 집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그때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남편 분이 얘기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럼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이 정도 했으면 좋겠네요.
그때 그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겠어요? 어지간히 강단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그걸 보고 그저 멍했어요.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알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같았어요. 순간 지난 기억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더라고요. 티를 낼 수도 없는 거고요, 참아야 했어요. 하지만 친구가 달라 보이는 건 피할 수 없었어요. 사생활이니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다만, 뭐라고 해야 하나 아쉬움이라고 해야 하나? 섭섭함이라고 해야 하나? 벽 아닌 벽이 생긴 기분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우리 사이에 그런 장애물이 생길 줄 몰랐던 거죠. 그날 기억은 그 정도예요,
죄송해요. 친구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게 아니잖아요. 불륜은 옳지 않은 게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잠을 설쳤던 거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죠. 바로 잡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순진했던 건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렇죠, 친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어요.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그런 일을 그렇게 처리하다니요, 대단했어요. 저도 거기에 맞춰야 했죠. 일상의 우리로 돌아갔던 거예요. 하루 만에 말이죠.
가끔 영혼의 친구라는 말을 하곤 했어요. 속으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구나 뿌듯했죠. 영혼의 친구, 맞아요. 영혼의 친구였죠. 그날 그 일만 없었다면 말이죠. 배신감? 아쉬움? 간절함? 여러 감정이었어요. 언니 같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했는데 그날도 그랬는데 말이죠. 아니요, 없었어요. 일기는 금기어가 되었던 거죠.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아니 꺼낼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시어머니 말씀이죠? 제게 시어머니는 스토커였어요. 연예인 쫓아다니는 파파라치 있잖아요? 그런 거였어요. 따로 산다는 거 빼고,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미심쩍다 싶으면 수시로 전화해서 확인했고요. 옆에 있는 제가 다 민망할 정도니까요. 말도 얼마나 험한데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며느리를 쥐 잡듯 하는 양반이 남한테 그렇게 인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귀부인 행세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알죠.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교양 있는 척을 그렇게 하더라고요. 친구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는데,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제가 아는 최악의 시어머니였어요. 그보다 악독할 수 없을 거예요. 표독스럽고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느 날 운동하는데, 신발 끈이 풀렸다고 하는 거예요. 눈치 주기에 뒤를 봤더니, 글쎄 나무 옆에 누군가 서 있더라고요. 자기 시어머니라고 했어요. 우리 아지트도 알고 있다고 했죠. 언제부터 그랬냐고 했더니 꽤 됐다고 했고요. 그 뒤로는 저도 모르게 뒤를 살피게 되더라고요. 그나저나, 친구 딸아이가 걱정이에요. 걔나 우리 애나 한창 집중해야 할 때인데. 시험이 당장 코앞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가뜩이나 중요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서. 잘못되는 거 아닌가 걱정이에요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는데,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마음을 놓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씩씩하던 애가 아침도 안 먹고 학교 갈 정도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죠. 친구 딸은 또 어떻겠어요? 곧 학부모 면담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꼭 잡아주세요. 그런다고 되돌릴 수 없겠지만, 억울함은 풀어야죠. 부탁드려요. 저 말고 딱히 친구가 없었던 거로 알고 있어요. 학교 친구들도 연락을 잘 안 한다고 들었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네요.”
- 편의점 사장
“언제 오시나 했습니다. 별일 아닌 건데, 소문이 이상하게 나서요. 피해자 분과 제가 그렇고 그런 사이랍니다. 어처구니없죠. 그러게 말입니다. 정확히 이런 겁니다. 그쪽 집 딸하고 우리 딸하고 같은 반이라서 학생회 간부로 만났던 겁니다. 학교에서 보거나, 여기 가게에서 얘기 나눈 게 전부이죠. 이게 특별한 겁니까?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 없는 거고 따질 수도 없는 거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게 몇 번 되겠습니까? 학생회 일이야 한 달에 많아야 한 두 번이고, 운동하다 들리는 정도가 다인 거죠.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얘기를 만드니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있겠습니까?
한 달? 한두 주 전인가요?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쪽에서 찾아와야 하는 거니까요. 소문이 그렇게 난 거 그렇게 처신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색안경 끼고 이상하게 보니 그건 정말. 사람들 참 희한합니다. 몰래몰래 다들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려면 티 나지 않게 하던가. 대응해봤자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잠잠해지겠죠. 집사람도 뻔히 알면서 그런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 보더라고요, 거참.
그분 남편 있죠? 오늘 여기 왔었습니다. 딱히 뭘 사려는 것 같지 않았고요. 얼마 있다가 갔습니다. 기분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죠, 얼굴은 대충 알고 있었죠. 아마도 저를 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문밖에서 누구와 만나더라고요. 아니, 만났다기보다 놀랐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옆에 있던 아내에게 물었더니, 피해자 시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아들하고 어머니가 만났던 거죠. 그거 있잖아요, 화들짝 하는 거. 그런 거였습니다. 눈빛이 세더라고요. 그게 다입니다. 제가 숨기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요.”
- 남편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지, 기분 상한 건 없으셨는지 물어보라 하셨습니다. 불편했다면 경황이 없어 그랬다고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머니와 아내 관계 말씀이시죠?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처음부터? 그럴까요. 저는 그냥 마마보이였고 지금도 변한 게 없습니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 주변 사람들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게 어머니 위하는 길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제 군대 시절까지 훤히 꿰뚫고 계십니다. 유별나죠? 어머니 손아귀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까요. 아내와 연애할 때도 공개 연애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어느 날 묻더군요, 마마보이냐고요. 답을 못했습니다. 아니 안 했다고 하는 게 맞겠죠. 창피했거든요, 그러자 당신 어머니께서 전화했다. 시시콜콜 다 알고 계시더라, 여관 간 거까지 알고 계시니 어떻게 된 일이냐며 따졌고 그제야 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거죠. 이후 상황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생각하시는 그런 일이 그대로 일어난 거죠. 결혼한 게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결혼 준비도 제가 한 게 거의 없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어머니가 처리했고 아내 혼수 역시 어머니가 다 결정했죠. 결혼 신고 정도만 우리가 한 거고 죄다 어머니 손을 거쳐야 했습니다. 아내야 불만이 가득했죠. 살 집도, 세간살이도 어머니 의사에 따랐습니다. 발 구르는 아내를 보고서도 모른 척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다 해주시니 편하지 않냐고 되레 물었던 게 저입니다. 어리석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의 빈자리, 어머니가 있으니까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습니다. 심란하다고 해야 하나요.
옆길로 빠졌네요. 결혼 초부터 티격태격했죠. 사사건건 부딪쳤고 서로 맘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상극 중의 상극이었습니다. 중간에 낀 저도 죽을 맛이었고요. 누구 편을 들 수가 없었으니까요. 외줄 타는 기분?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집을 얻어 나가신다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당신에게는 절체절명의 결단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의 그때 모습 생생합니다. 그러시고는 정말 발길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압니다, 섭섭하셨을 테지요. 연락은 계속 드렸죠. 늘 하던 일이었까요. 아내는 큰 짐 덜어낸 기분 아니었을까요? 아니요, 묻지는 못 했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거죠.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습니다. 순진했죠. 아니 멍청했던 거죠. 정말 둘 사이 그렇게 정리됐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일기 보고서 알았습니다.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어머니에게 놀랐습니다. 어찌어찌해 끝난 줄 알았는데, 그렇게 골이 깊은 줄 몰랐던 겁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돼있는 게 없었던 거죠. 다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부모이고 집사람이고 말이죠. 어머니도 아내도 다 남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속으로 삭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습니까? 어머니 삶도 아내 삶도 넌더리가 났던 겁니다. 저도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아내가 집착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집착했습니다. 그 사람, 그놈이 누구인지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뒤 따라다녔던 게 사실입니다. 일기 이전부터 그랬습니다. 결국 남는 건 좌절감뿐이더라고요.
그날 딸을 만나러 학원 근처에서 갔던 거죠. 연락이 안 돼서 문자 보내 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냥 시간 때웠습니다. 아니요, 산책로 쪽으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지트, 알고 있었습니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둔덕을 넘어가더라고요. 거기에 앉아있는 걸 본 거죠. 그뿐입니다.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 결국 못 만나고 집으로 갔던 겁니다. 만족하십니까?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누가 속에 있는 말을 하겠습니까? 혼자 있는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연락이 온 거죠. 분노라고 해야 할까요? 분노,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기의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미칠 지경이었죠. 분노만 떠올랐습니다. 제가 전화드렸습니다. 일이 생겼다고 말씀드렸죠. 말을 못 하시더라고요.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먼저 끊으셨습니다. 허전함, 아니 공허함이 저를 감쌌죠. 그리고 그다음이 없습니다.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아내 장사 치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서둘렀다고 합니다. 왜 서두른 건지, 뭔 짓을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떠나는 사람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으니, 면목 없습니다. 얼마나 못난 인간인지 이번에 실감했습니다.
요전 날 어머니가 하신 말씀 듣고 찾아갔던 겁니다. 별 뜻 없었고요, 그냥 갔다가 왔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그런 거 아니었겠습니까? 편의점 사장님도 제 얼굴 모르시지 않았을 테고, 불쾌했다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문밖에 어머니가 서 계셨습니다. 깜짝 놀랐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범, 이러면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솔직히 사람들 시선이 싫었고요, 일단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서둘러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궁금하신 것 같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당분간 어머니가 집에 같이 계실 예정입니다. 저 밥 해주신다고 하는데 딸 걱정도 되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아내 유품 정리도 하신다고 하고요. 그럼요, 딸이 걱정이죠. 충격이 이만저만하겠습니까? 저도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돌봐주신다고 하지만, 둘 관계도 그리 좋지 않거든요. 솔직히 벗어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모든 게 뿌옇기만 합니다. 아니요, 절대로요. 어떻게 다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떠올리는 것만으로 치가 떨리는데, 그걸 다시 본다고요?”
- 메신저 친구
“이렇게라도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쁜 일이죠, 대학교 친구예요. 결혼하면서 멀어진 거죠. 메신저로 다시 만났던 거고요.
아니요, 직접 본 적은 없었어요. 온라인으로만 안부 나눴죠. 확인해보니 십일 전이 마지막이었어요. 그게 뭐 뻔하잖아요? 애 엄마끼리 대화하는 거 뻔해요. 남편 얘기, 시어머니 얘기 그리고 애들 얘기 그런 거죠. 애들이 같은 또래잖아요. 둘 다 전업주부라 거기에만 매달릴 수밖에요. 우리 애는 대학교 일 학년이에요. 그래서 친구가 묻고 저는 대답하고. 거의 그런 식이 많았죠. 애들 키우는 게 뭐 그렇잖아요.
특별한 거라? 이런 거도 그런 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느 날 문자 받고, 이게 뭐지 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이에게 환경 변화가 생기면 충격이 적지 않겠지? 우리 애 잘 버틸 수 있을까? 고부 문제라고 생각해서 넘어갔던 거죠. 사이 안 좋은 거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요? 남편은 잘 모르겠어요. 불편해하는 거 같기도 해서 웬만하면 입에 올리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문제없는 가정이 어디 있어요. 하나둘 문제 안고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서, 의당 그러려니 했던 거죠.
멀다는 핑계로 가보지도 못했네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싶어요. 그러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