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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Nov 04. 2023

새로운 돈줄

90년대 한국 영화 이야기 #9

**** 이혁래 감독의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의 넷플릭스 개봉을 축하하며, 예전에 브런치에 연재했었던 '90년대 한국 영화 이야기'를 재편집 / 연재합니다. <노란문>에서 봉준호 감독이 언급했던 '거대한 라쇼몽의 용광로'라는 표현처럼, 이 글도 많은 부분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오류가 확인될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하겠습니다.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나 가정용 비디오 콘텐츠 회사들을 중심으로 충무로 진출 분위기가 생겼던 건 93년 오인환 공보처 장관의 브리핑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건 무시할 수 없겠지만, 사실 그 이전에 1991년 제정된 '종합 유선 방송법'에서 1995년부터 케이블 방송국을 설립할 수 있도록 명시했으니, 웬만한 대기업, 중견기업에서는 콘텐츠 제작역량을 그 이전부터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동양그룹이나 CJ처럼 오랫동안 준비해 온 대기업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으로 TBC를 강제로 빼앗긴 삼성에서 이를 갈면서 미디어 그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돌고 있었는데, 결국 다큐멘터리 채널은 제일기획을 거쳐서 삼성영상 사업단이 차지했고,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의 경우 계몽사, 대원동화, 세영동화, 웅진그룹, 동양그룹 등이 노리고 있었지만, 결국 동양그룹의 품으로 돌아가 94년에 OCN (오리온 카툰 네트워크, 이후 투니버스로 변경)이 설립되었습니다. <결혼 이야기 (1992)>가 이끌어 준 '충무로 기획영화 경향'을 통해서 "영화도 제조업 만큼이나 철저하게 품질이 관리되고 수익을 예측하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대기업의 미디어 산업 투자를 부채질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처음부터 모든 게 다 잘 풀린 것은 아니죠. 일단 기획실 중심의 영화 제작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 영화 제작은 여전히 주먹구구식 예산 집행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도 그럴 듯이, 보통 영화 제작 예산에서 스테프들 인건비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게 얼마나 나가는지 알 수 있는 표준 계약서라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어요. 연출팀, 촬영팀, 조명팀 이렇게 크게 구분하고 그냥 각 팀 리더에게 뭉칫돈을 주면 그 리더들이 알아서 분배하는 도제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중간에 영화가 엎어지면, 중도금이니 잔금을 못 받는 경우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행도 있었죠. 여기에, 충무로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스테프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든지 (한 식당을 정한 후 스테프들이 자유롭게 외상을 달고 식사할 수 있게 하는), 시나리오를 쓸 때 여관방을 잡아서 작가나 감독을 감금(?)시켜 쓰게 한다든지 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예산을 잡기가 너무 힘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커다란 지갑에 현금을 들고 다니면서 진행비라는 명목으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도 했고요. 이러니 투자를 관리하는 대기업 경영관리실에서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진행비'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 영수증만 하나 띡 만들어서 내면 되던 일을, 하루아침에 사전품의서 결재에 진행비 집행보고까지 만들어야 하는 층층시하에 놓인 충무로 제작부장들 심정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영화 제작에는 예측이 안 되는 난관이 너무 많았습니다. 호주 현지 로케이션으로 찍어 왔는데, 도무지 편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장면 연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현장에서 배우와 스테프 간에 난투극이 벌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대기업 입장에서 보기엔 아직 덜 문명화된 시장에 진출한다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가끔은, 촬영장 사고로 인한 참혹한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구요 (영화 <남자 위에 여자> 촬영 중 헬리콥터 추락사고). 이 사고로, SK계열이던 <미도영화사>는 한동안 한국영화 제작에서 손을 떼기도 했습니다.     



출처 : 황동미 외, <한국영화산업구조분석>, 영화진흥 위원회 연구보고, 2001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 한국영화에 뜨거운 구애를 보냈던 대기업 진출은, IMF라는 결정타를 먹고 나서 완전히 충무로에서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철수하기 직전에 터진 게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 <쉬리>였습니다).  CJ만 제외하고 말이죠. 당시 CJ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서 여러 다양한 방면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훨씬 더 대규모의 자금을 투자하면서 시작했었거든요. 마치 기업의 사활을 걸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 내실을 다졌기 때문에,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994년에 설립되어 전 세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스필버그', '카첸버그', '게펜'의 <드림웍스 SKG>에 투자하여 2대 주주가 되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국내에선 '송지나 작가'와 '(고) 김종학 PD'를 영입해서 <제이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CJ E&M으로 발전). 하지만 역시, 가장 성공한 투자는 결국 1996년에 설립한 CGV 극장사업이 되겠네요. 비록 극장업이 생각보다 수익이 얼마 남지 않는 장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한국영화 제작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무로에서 대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는 별 무리 없이 다른 돈줄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금융자본인 '창투사 (창업 투자 회사)'의 진출입니다. 96년부터 '일신창업투자' <은행나무 침대>에 투자한 걸로 시작된 창투사의 한국영화 투자는, IMF 이후 폭발한 '코스닥 빅뱅' 시기와 맞물려 우후죽순 등장한 여러 창투사들에게 유혹적인 상품이 됩니다. 보통 창투사들의 수익 환수는 벤처기업들이 IPO (기업공개)와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면서 비로소 시작되는데, 빨라야 4~5년 걸리는 IPO에 비해서 영화 제작은 보통 1,2년 안에 결과가 나오니까 매력적인 투자상품이 아닐 수 없었던 거죠. 게다가 금융자본의 경우 포트폴리오 투자나 투자조합 등을 통해서 리스크를 분산하는데 능란했었고요. 또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진행비 결제 맡을 때마다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대기업보다, 투자만 딱 하고 나서 수익을 챙겨가는 창투사들과 궁합이 더 잘 맞았기 때문에 양자가 서로 만족한 상태의 투자 형식은 그 뒤로도 오래갈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을 거쳐 2000년대까지 이어진 창투사들의 한국영화 제작은, 이후 2005년부터 시작된 '한국 벤처 투자' '정부 모태펀드 (개별 투자 자펀드의 자금이 되어주는 펀드)'를 바탕으로 한 투자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기록에 의하면 전체 한국영화 제작 투자액의 77.6%가 정부 모태펀드의 자펀드 자금이었다고 하네요. 2013년에 개봉한 <7번 방의 선물> 같은 경우 38억의 제작비로 302억을 벌어들인 모태펀드의 가장 큰 성공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7번 방의 선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태펀드에서 투자한 작품들이 이미 대기업에서 선투자 진행이 되었거나 대기업 계열 극장에서 상영이 확정된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 벤처투자가 필요한 작은 영화들에게 투자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못 살리는 현상은 계속되었었죠. 결국 2016년에 정부에서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한 투자배급사의 영화에 모태펀드 자금을 투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도 했었습니다. 딱 집어서 말하자면 CJ와 롯데는 모태펀드의 투자를 못 받게 되었던 건데, 이와 같은 출자제한 정책은 이후에 한국 영화 흥행성적에 따라 그때그때 변경되기도 했었습니다.



머니투데이, 2016년 1월 11일 기사에서 재인용






함께 읽기 좋은 글 :



한국 영화 산업 구조 분석 (2001, 영화 진흥위원회, PDF 다운로드)


한국 영화산업 투자구조와 수익성 현황 및 개선 방향 (2014, 한국 수출입 은행, PDF 다운로드)


한국모태펀드 영화계정 정책효과 분석 및 수익성 개선방안 (2023, 한국 벤처 투자, HWP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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