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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Nov 03. 2023

배급 시스템의 변화

90년대 한국 영화 이야기 #8

**** 이혁래 감독의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의 넷플릭스 개봉을 축하하며, 예전에 브런치에 연재했었던 '90년대 한국 영화 이야기'를 재편집 / 연재합니다. <노란문>에서 봉준호 감독이 언급했던 '거대한 라쇼몽의 용광로'라는 표현처럼, 이 글도 많은 부분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오류가 확인될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전에는 지방마다 다른 소주업체가 있었고 그에 따른 주류 배급 시스템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 배급에도 그런 독점적인 지방 배급 구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죠. 서울 개봉관 배급과는 별도로 서울 변두리, 경기-강원, 부산-경남, 광주-호남, 대구-경북, 대전-충청 이렇게 6대 지방에서 독점적인 배급권을 가지는 지방 배급 구조는, 아마도 1950년대부터 형성되어 이후 2000년대까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말은 거창하게 배급 구조라고 했지만, 말하자면 지방 토호들이 운영하는 영화관들이었던 거죠. 하지만 90년대부터 시작된 대기업 계열 멀티 플렉스 영화관들이 지방에 있던 극장들도 사들이면서, 한국영화는 이제 대기업 제작자가 극장 배급과 팝콘 판매까지 하고, TV 방송 2차 판권에 OTT 스트리밍까지 해내는, 세계에서 유래 없는 최고의 대기업 독점 구조가 된 셈이네요.



출처 : 김미현 외, <한국영화 배급사 연구>, 영화 진흥위원회 연구자료집, 2003




사실, 50~60년대에서는, 한국 영화 제작 투자에 있어서 6대 지방 배급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했습니다. 보통 제작비 50% 이상을 투자하고, 출연 배우에 따라서 90%까지 투자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돈만 가지고, 혹은 자기 돈은 한 푼도 안 쓰고 영화를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방 흥행사가 영화 제작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만큼, 그들의 입김도 세지게 되었었죠. 배우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수정까지 직접 요구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배적인 투자 관행은 70~8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지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국가 경제가 수출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서울로 인구가 몰리게 되었고, 서울의 거대 도시화, 그리고 서울 / 수도권 경제의 비중이 점차 커지게 되면서 지방 경제가 몰락하게 된 상황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 하더라도, UIP에서 전국 직배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 후인 90년대 중반까지도, 지방 배급권 입도선매는 한국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한 씨드 머니 역할을 했습니다. "10억 규모의 영화를 기획할 경우, 3억은 비디오 판권, 3억은 지방 판권..." 이런 식으로 대충 예산을 잡는 것이 가능했었던 거죠. 하지만, 95년 즈음에 <삼성 영상사업단>, <일신창투>, 그리고 <시네마서비스-서울극장>에서 전국적인 직배망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6대 지방 배급권들의 권세는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96년에 <제일제당 CJ>에서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Golden Harvest)', 호주의 '빌리지 로드쇼 (Village Roadshow)'와 같은 다국적 메이저 극장체인과 합자해서 만든 <CGV 극장체인>이 전국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1999년에 <롯데시네마><메가박스 (초기에는 동양그룹이 현재는 중앙그룹이 보유)>가 차례로 설립되면서, 지방도시 소극장들의 생명은 6대 지방 배급망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대기업 체제의 극장체인들이 들어서면서 개선된 점이라면, 그나마 흥행실적의 투명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영화 진흥위원회에서  통합 박스 오피스 집계 (금액으로 환산된 흥행 기록 https://www.kobis.or.kr/kobis/business/main/main.do)을 하고 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방 극장들은 통합 전산망에 가입이 되지 않은 상태라서 정확한 흥행 집계는 힘들었고 몇 명이 관람을 했는지 정도만 (그것도 반으로 동강난 티켓 수를 집계하는 수기로) 파악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2000년에 있었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전국 흥행 기록의 경우, 실제 관람객을 집계한 기록이 아니라 (정확하다고 보기 힘든) 지방 매출을 관객 수로 환산해서 나온 기록이었었죠. 때문에, '삼성 영상사업단'의 직배를 통해 지방 관객 수를 실제로 집계한 <쉬리>의 1999년 흥행 기록과 일대일로 비교하기 어려웠기에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이런 촌극이 발생할 수 없게 된 것이죠.







함께 읽기 좋은 글 :


한국 영화 배급사 연구 (영화진흥위원회, PDF 다운로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48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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