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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ug 23. 2023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

한국의 카스트 제도

"만일 캐나다에 직업의 귀천이 없다면, 그건 아무리 낮은 임금의 직업도 가지는 게 너무 힘들어서일 거야."


이민 와서 첫 1년 동안, 정말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현지 근무경력과 세금 납부 기록을 받을 수 있는) 로컬 비즈니스에 취업을 해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했는데도 잘 되지 않았었지. 지금은 소위 'Seller's Market'이라고 해서 구직보다 구인이 더 어렵다고는 하지만, 정말이지 저 때는 통장에 급여가 따박따박 들어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어. 식당 주방 보조, 접시 닦는 일에 지원했을 때에도 최소 1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 맞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아내와 저런 얘기까지 나누게 된 거지.


그렇다면 진정 캐나다에 직업의 귀천이 없을까? 그건 아닐 거야. 솔직히 다른 주,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밴쿠버와 같은 대도시에는 분명히 직업의 귀천이 있다고 볼 수 있어. 예전에 한 번은 극장에서 맥주 광고를 하는데, 집 싱크대 수리를 하러 온 배관공 남자를 하찮게 보다가 며칠 후 클럽에서 근사하게 차려입은 그 남자를 다시 만나고 당황해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나온 적도 있거든. 물론 광고를 제작한 사람의 시각이겠지만,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반영했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워낙 다인종 다문화의 사회라서, 세계 각국에서 온 부모들이 자식에게 가지는 희망사항은 여기도 존재한다고 봐야 해. 예를 들어 한국계 부모들, 인도계 부모들, 이란계 부모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서 전문직을 갖게 하도록 노력하거든.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귀한 직업과 하찮은 직업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거야. 그리고 얼마 전에는 나랑 같이 건물 관리 일을 하는 직장동료가 공구와 재료들을 잔뜩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데, 어느 입주자가 타더니 자기가 좀 바쁘니 내려달라고 했다는 거야. 둘 다 원어민 백인이었으니까 인종차별은 아니겠지. 직장동료는 "야, 캐나다에 카스트 제도 불법 아니었어?"라며 농담으로 넘겼다지만, 어쩌면 그 입주자 생각으로는 공구와 재료를 들고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저기서 따로 짐 나르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이렇듯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각각 사람들에게 각각의 차이가 있는 한 차별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 문제는 성숙한 사회에서 그 차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있겠지. 막말로, 저 빌딩 입주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대놓고 차별적인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어.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부끄러운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물론 뒤에 가서 셔츠 컬러를 빳빳하게 세운 사무직들끼리는 불평을 할 수도 있겠지. "어휴. 저기 저, 학교 다닐 때 팽팽 놀기만 하던 놈들, 저런 따까리 일을 하는 냄새나는 작업자들은 좀 계단으로 다니면 안 되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왜 없겠어? 하지만 그걸 밖으로 터놓고 말을 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거지. 밴쿠버에서는 적어도.


예전에 L마트에서 일할 때는 훨씬 더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했었지. 기본적으로 자기 컴퓨터 고장 수리를 맡기러 온 사람들은 화가 나 있거든. 그러니까 평소에는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던 본심을 이때다 싶어서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어. 게다가 상대는 딱 봐도 영어를 어버버버 잘 못하는 이민자잖아. 보통 사회 생활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무례한 사람의 비율이 1% 내외라고 한다면, 소매업, 고객 서비스업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10% 가깝게 되는 것 같았어. 근데 그게 또 어느 정도 인이 박히다 보면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가게 돼. 말 그대로 그냥 넘어가는 거야. 화가 나거나 무례한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고생했다는 게 아니라, '음.. 넌 인생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입으로 내뱉지 않고 눈으로만 내뱉었다는 거지. 그러다가 한 번은 입사 초기에 전화를 받았는데, 사람 얼굴을 보고도 영어가 잘 안 되는데 전화 영어가 들렸겠어? "Pardon, Pardon"만 거듭하고 있으니까, 저쪽에서 그러는 거야. "캐나다에서 살려면 영어를 배우고 와라, 이 바보야 (you moron)!"라고... 아니, 다른 영어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왜 욕설은 그렇게 또박또박 잘 들리는 건지.  


그전에는 손님들한테 수모를 겪어도, 오늘 일진이 안 좋았으려니, 내가 영어를 못해서 그런 거려니.. 하며 넘어갔는데, 이땐 부서장한테 보고를 했지. 이메일을 써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하고 말이야. 근데 그게 지점장한테 또 올라가더니, 본사까지 보고가 되었었나봐. 나중에 지점장이 직접 그 손님한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구. 그가 한 일은 캐나다의 보편적인 사회 정서와 크게 어긋나고, L마트 입장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태도라고. 그러면서 그 손님은 L마트 캐나다 전 지점에 출입금지되었다고 통보를 했다고 해. 내가 뭐, 직접 지점장 통화를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녀가 그랬다고 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긴 한데,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뭐가 옳은 일인지, 뭐가 부끄러운 일인지 정도는 분간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지점장실에서 나랑 부서장이 같이 손님 앞에 무릎 끓고 사죄해야 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다고 해서 L마트의 고객 서비스가 낮은 것도 아니야. 오히려, 다른 어떤 소매점보다 고객 서비스에 사업방향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 다른 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애초에 창업자 마인드가 "상거래는 인간관계다"라는 것이어서 다른 소매업체와 비교해서 매장에 일하는 사람도 많고 직원들 교육도 잘 되어 있는 편이었어. 하지만, 손님과 마트 종업원과의 관계는 돈을 주고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과, 그 구매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의 관계일 뿐이지, 누가 누구를 시중들거나 누가 누구를 하대하거나 하는 관계가 아니잖아. 물론, 여기에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백을 들어달라고 하는 (귀) 부인도 있었어. 근데 내 말은, 그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용인이 되는가 하는 거지.  


비슷한 경우로, 캐나다 직장 내에서, 혹은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하는 문화에도 색다른 점이 있어. 직책을 말하는 영어 단어 중에는 'Officer'가 있는데, 이 직책은 뭔가를 명령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할 수 있어. 경찰관인 Police Officer는 물론, 지난 코로나 시대에 사회 안전을 위해 매일매일 새로운 명령을 내렸던 사람은 Provincial Health Officer (주 보건감독관)이었고, 각 회사마다 국가 환경기준을 맞추는지 감독하는 Environmental Officer (환경감독관)가 있기도 해. 그리고 캐나다 사회에서는 Officer들의 업무에 대한 권위는 상당히 인정을 해주는 편이야. 물론 그들이 하는 일이 결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겠지. 직장 내에서도 직장상사와 부하직원들은 친구처럼 친한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지만) 업무 지시에 대해서는 절대복종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명령 체계의 권위를 인정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 그런데, 이 말이 Officer들이나 직장 상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건 아니야. 부하직원의 사생활에 간섭하거나, 업무 외에도 수직관계가 존재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지. 고층 빌딩 시설 관리를 하는 현재 내 직업도 건물에 와서 일하는 하청업체 기사들을 관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 내 직위에서 그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갑질을 하는 것이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야.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왜 이리 다른 걸까? 사회의 보수성으로만 따지자면 캐나다가 한국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 게다가 영연방인 캐나다는 영국 사회의 전통이나 문화 잔재가 남아있을 텐데, 영국은 한국만큼 빈부격차가 심하고 심지어 귀족도 아직 남아있는 나라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갑을관계의 양상이 다른 걸까? 일단 영국을 보자면, 왕정이 명목상으로는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들어선 17세기 말과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본격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가던 18세기 중반까지 거의 백 년의 적응기간이 있었던 거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보수적 사회를 유지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깨닫게 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거야. 게다가 산업혁명이 끝나던 18세기말에는 식민지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패권 경쟁국 프랑스는 대혁명으로 왕의 목이 잘렸었잖아. 이쯤 되면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사회 내에서 신분, 계층을 나누어 지배, 피지배를 하는 것이 언제든지 자신에게 칼날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느꼈을 거야. 그러니까 19세기 초에 공장법 같은 걸 만들어 아동 노동을 폐지하고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겠지.


반면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30년도 안되어 경제가 급성장한 한국은 일단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도그마였었어. 당연히 업무체계의 효율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겠지. 87년 민주화 운동 / 노동자 대투쟁 때, 현대 중공업 노조에서 제일 처음 요구했던 것이 '두발 자유화'와 '구타금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상하관계와 절대복종은 업무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에서도 당연한 문화가 되었던 거였어. 효율성을 따지자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 미군정이 들어설 때 싹 다 뒤집어엎지 않고, 업무 효율성 때문에 제국주의 일본에 부역했던 모든 고관대작들, 경찰, 검찰 들을 그대로 그 자리에 앉혔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일 수도 있었을 거야. 일제 헌병 완장을 차고 독립운동가를 사냥하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 그대로 빨갱이 사냥을 하고, 국가권력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자유를 탄압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요즘도 금전 소득, 학력으로 계층을 나누어 그에 따른 권력이 존재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이 수치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연장자가 나이 적은 사람에게 훈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내가 팬질을 함으로써 연예인이 광고를 찍고 돈을 번다 생각해서, 팬이 함부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지위가 높다고 상대의 인생에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보면, 이 나라의 시대정신은 아직 일제강점기에서 못 벗어난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 실제로 아직 해방된 지 백 년도 안 됐고.


그리고 한창 한국이 개발되고 있을 때, 그러니까 모두가 가난하고 아빠, 엄마 모두 입에 풀칠하느라 바빴던 시기에, 그땐 정말 동네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알아서 컸잖아. 다시 말해서, 부모에게 받아야 할 가정교육을 동네 형, 누나에게 받는 걸 당연하게 여겼어. 어른들은 손위 아이에게 대리훈육권한을 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었고. "엄마 금방 올 테니까, 형 (누나) 말 잘 듣고 있어."라는 말은 동네에서 너무도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대사였지.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나이를 따져. 대화를 하다가도 잘 안 먹히면 "이 씨... 너 몇 살이야?" 하고 따지고 말이지. 아내의 지인 중에는 밴쿠버에서 초등교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다는 거야. 자기 반 학생이 다른 어린 학생을 때려서 주의를 줬더니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을 때릴 수 있어요."라고 했대.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물어봤다더라구. 이게 정말 웬 나라 망신인지. 이렇게 같은 사람들에게 비대칭적이 권력이 부여되어야 사회에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어 온 건 오랜된 일이야. 이 역시 완장 찬 앞잡이 문화의 잔재라고 생각해.


87년 이후 절차적 민주화와 해외여행 자율화를 통해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문화는 조금씩 성장해 오긴 했지만, '직업'과 '재산', 그리고 이를 위한 밑거름으로 인식되는 '학력'으로 신분을 나누는 일은 여전했던 것 같아. 최근에 추가된 미모, 성적 매력이라는 조건은 차라리 원시적이라 귀엽게 생각될 정도야. 그리고 그렇게 나뉜 신분 간에 갑질이 어이없을 정도로 횡행한 것도 여전하고. 오히려 모두가 가난했던 7~80년대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들어가게 된 현재의 갑질이 더 지독한 것 같아. 어쩌면, IMF를 통해서 경제적 낙오자들이 사회 안전망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모습을 겪고 각자도생의 문화가 더 강해지면서 그렇게 될 걸지도 몰라. 그러니 직장에서 잘리지 않으려면 당연히 어떤 수모도 마다해야 한다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지. 최근에 갑자기 급증하는, 이른바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묻지마 폭력 범죄는, 이런 신분간의 갑질이 사회안전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잘 말해주는 것 같아. 그리고 솔직히, 사회적 살인, 인격 살인, 그리고 실제로 한 사람의 자살로 몰고 가는 사회 전체의 갑질문화에 비해,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도 않아. 마치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 되는 거라는 군대 속담 같잖아.


그래서, 최근 화제가 된 김훈 작가 <내 새끼 지상주의>에 대해선 절반정도밖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실 7~80년대 학부모들 역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대단했었거든. 오히려 학교 교사에게 찾아가 촌지를 주고, "때려서라도 공부 좀 시켜달라"라고 부탁을 했었잖아. 우리 어머니만 해도 말야, 내가 어렸을 때는 같이 버스를 타면 얼른 백을 던져서 자리를 잡아 당신 아들을 앉히려고 하기도 했고, 고3 때는 집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베란다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떠들면서 놀고 있으면,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고, 양동이로 물 뿌리고 난리가 아니었다니까. 학원이나 과외, 촌지를 줄 형편은 안 되니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아들 진학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요즘 위장전입을 하면서 자식 입시에 관여를 하는 부모들과 과연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어. 어쩌면 일종의 종족보존의 본능이었을지도. 그렇더라도 그때는 학부모의 민원으로, 주민의 민원으로, 업무량 과부하로 젊은 교사와 공무원들이 꽃다운 나이에 삶을 접는 일은 없었잖아.


그땐 지금처럼 교사와 공무원의 권위가 바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물론 반대였지.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서 수업시간에 딴짓한다고 몽둥이로 맞고, 육성회비 안 가지고 온다고 몽둥이로 맞고, 반장은 담임교사의 사냥개 역할을 하고, 교무실 교사 책상 서랍에는 촌지 봉투로 가득했던 시절이 좋았던 건 아니잖아. 여학생이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가면 동사무소 공무원이 지장을 찍어 준다고 여학생의 손을 주물럭거리고, 차상위 계층 선정을 빌미로 뒷돈을 받던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 교사나 공무원의 권위 유무를 문제 삼는 건 본질을 호도하는 거라고 생각해. 지금 젊은이들이 우리 때보다 정신적으로 약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정신력 측정이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실제로 의지가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약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를 과연 성숙한 근대 시민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진짜 문제는 바로 한국 사회의 문화에 있어. 상대를 어떤 기준에 의해 자신과 비교해서 상하관계를 나누고, 거기에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주류언론이 자기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을 받아 적는 일에만 급급할 때는 더욱더. 민원인 또는 학부모, 연예인 팬클럽, 댓글러 등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지금도 문제지만, 예전처럼 교사나 공무원, 경찰이 권력을 마구 휘둘렀을 때 역시 지옥이었잖아.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비정규 저임금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 저임금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함부로 하대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거야.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학교 다닐 때 게으르고,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니기만 했던 과거가 아니라, 어린 날의 일탈은 당연히 평생을 거쳐 처벌을 받아야 하는 죄라고 생각하는 거야.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내가 몸이 아프거나, 외모가 떨어지거나, 말을 더듬거나, 성격이 소심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이유로 함부로 대하거나 따돌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인간 사회에 상하관계가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야.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야.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이 모든 걸 알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렇지만 현실이... " 하면서 핑계를 대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주저하는 것이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구? 노인네들 다 죽어 없어지면 좀 나아질 것 아니냐고? 물론 세대가 바뀌면 어느 정도 문화도 바뀌는 계기가 되지. 하지만 적어도 이 갑질문화만큼은 현재 젊은 세대라고 해서 완전 자유로운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오히려 예전에는 부모나 교사들의 잔소리 중에는 "잘난 체하지 말라"는 것이 있었잖아. 지금 생각하면 겸손의 미덕을 가르치려고 했다기보다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집단주의 / 패거리 문화 사회에서 괜히 나서다가 화 당하지 말라는 조언이었을 것 같아. 하지만 한국사회가 좀 더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내세우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졌지. 문제는 자신의 능력과 권리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야. 내가 고학력자로서,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돈을 낸 고객으로서 어떤 능력이 있다면, 상대를 무시하고, 하대하고, 강요하고, 폭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한 것 같다는 거야. 이런 문화가 계속되면, 그래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성을 계발해야 할 청소년 시기를 신분 상승을 위한 입시기능 개발에만 몰두하는데 동의한다면, 그렇게 해서 이 사회가 10%의 승자와 90%의 패자로 나뉘게 된다면, 사회 화합은 아예 물 건너갔다고 봐야지. 그래서, 내 생각에 답은 공권력 밖에 없는 것 같아. 개인의 자각과 선의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시점에서는 갑질과 차별을 방지하는 법률 제정과 강력한 법 집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바로 범법자의 처벌조항이 명백한 '차별금지법'이 하루속히 제정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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