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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카 아카이브 Aug 28. 2021

비운의 마지막 '로얄' :
대우 P-100 프로젝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 5]

로얄시리즈가 프린스와 브로엄으로 분화된 가운데, P-100 프로젝트는 대우자동차의 마지막 '로얄'이었다. ⓒ 보배드림

DAEWOO P-100

[Archive 005] 1998-2002, Designed by DWTC. ⓒ Dong Jin Kim


 필자가 가장 애호하는 차량이기도 하고, 아마 한국에서 가장 화제성이 높은 베이퍼웨어 차량일 것이다. 대우 P-100은 한때 대우의 '홈그라운드'였던 준대형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개발되어온 브로엄의 후속 모델이다. 비록 개발 단계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 수년간 출시가 지연되다 무산되었지만, 그 동안 많은 정보를 남겨 지금까지 소수의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차량이다. 

 초기에는 당시 레간자의 후속으로 개발되던 V-200 (매그너스)이 중형차 시장을 담당하고, P-100이 브로엄을 교체해 준대형 시장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었다. 1998년부터 구체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엔지니어링은 대우의 신차 개발 요충지였던 영국의 대우 워딩 테크니컬 센터 (DWTC)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디자인 역시 DWTC의 안으로 확정되었다. 한때 플레그쉽으로 개발되었으나 대우의 쌍용 인수와 함께 체어맨을 라인업에 포함하며 무산된 A-100의 디자인 요소를 대거 착안했다.

쉬라츠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발 과정은 앞선 매그너스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동시 역학' 방식으로 개발 기간을 단축시켰으며. 단조 타입 어퍼 암 같은 여러 부품들을 매그너스와 공유했다. 플랫폼 역시 레간자의 것을 개량한 매그너스의 플랫폼을 다시 늘려 사용할 예정이었다. 파워 트레인은 대우가 개발한 직렬 6기통의 2.0, 2.5 XK 엔진을 얹을 예정이었다. 당시 대우자동차의 직원들은 기존 사용하던 홀덴의 '패밀리 2'엔진보다 몇십만 원 더 비싼 2.5XK를 장착할 P-100이 얼마나 팔릴지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999년, 이른바 '대우 사태'가 불거지며 쌍용차를 매각하게 된 대우자동차는 쌍용자동차의 후속 프로젝트를 이관함과 동시에 S-100과 T-200을 통합시키는 등 대대적인 프로젝트 정리를 감행한다. 이 시기에 V-200 (매그너스)이 준대형급의 크기로 상향 조정되자, P-100 역시 대형차 수준의 크기로 상향 조정해 준대형차 시장과 라인업 공백 상태인 대형차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이후 P-100은 실내외를 다시 대형차에 맞게 수정하게 된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회사 상황으로 개발이 지지부진해져 목표 출시 시기 역시 1998년, 1999년 하반기에서 2000년대 까지 밀리게 된다.

개발 계획이 변경된 이후 그랜저 XG를 의식하며 개발했다는 후문.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P-100의 개발을 계속 강행했다. 특히나 GM의 대우자동차 인수가 수면 위로 떠오르던 99년 말부터는 매그너스와 레조의 다음 타자로 P-100을 점치고 2001년 출시를 확정한다. 이는 김태구 사장과 제너 아태지역 부사장의 전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2000년 5월부터는 국내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로드테스트를 진행하며 개발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후 대우자동차는 최종 부도처리 후 모든 프로젝트를 보류하고 완성단계에 있던 T200 (칼로스), J200 (라세티)와 직렬 6기통 XK 엔진 개발에만 집중하게 된다. P-100 역시 2000년 11월부터 개발이 보류되고, 2001년 1월, 대우자동차가 제출한 'P-100 개발 중단' 내용을 담고 있는 신규 투자계획에 채권단이 동의하며 공식적으로 프로젝트가 잠정 중단된다. 이유는 '제한된 국내 시장 수요와 충분한 개발비용 확보의 어려움'. 당시 P-100은 개발비용 400억 이상을 들여 디자인 확정 이후 설계 마무리 작업을 하던 상태로 확인되었다.


 P-100은 이후에도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GM의 인수가 확정되며 한숨을 돌린 대우자동차는 2001년 하반기부터 P-100을 2003년 하반기 - 2004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다시 개발하게 된다. 특히 2002년 4월엔 GM과 대우자동차, 산업은행이 신설 법인 설립을 위한 본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P-100의 출시와 부평 공장 생산을 약속했지만, 정작 P-100보다는 기존 GM 계열 차량 기반 신차 개발을 원했던 GM과의 의견 차이로 출시가 다시 불투명해졌다. 결국 2002년 5월 28일, 닉 라일리 당시 GM대우 초대 사장 내정자가 'P-100은 2003년 이후 새로 개발하겠다'라고 사실상 개발 무산 선언을 하며 P-100은 끝내 빛을 못 보게 된다. 이후 2002년 7월에 생산을 약속하는 '특별단체교섭 합의서'가 작성되기도 했으나, 이미 개발 중단된 프로젝트를 되살리기는 무리였다.

P-100의 일대기는 '다사다난'으로 정의할 수 있다.

 P-100은 '로얄' 가문의 잊혀진 왕자였다. 대우자동차의 황혼기와 과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P-100은 3대 이상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는데, 놀랍게도 이들 중 로드테스트에 쓰인 한 대가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2003년 경 한국에서 카자흐스탄 카라간다로 수출된 이 차량은 현재 비영리단체인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에서 매입해 한국으로 다시 귀환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나머지 개체들은 확인된 바가 없다.

유일하게 남은 P-100의 내외관 영상, 빨리 한국에 들어와 빛을 볼 수 일길 바란다. ⓒ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

TIMELINE

현재 소재: 카자흐스탄 카라간다 카지베크비스키


REFERENCE

한국일보 '99년 신차들 다가온다' (1998.12.07)

전자신문 ''수출 엔진' 달고 파워 레이스' (1998.12.26)

매일경제 '자동차 업계 신차종 10여개 선보여' (1999.01.05)

매일신문 '자동차3사 99년 출시 신차 가이드' (1999.02.04)

PC통신 '대우의 신차들' (1999.06.19)

카라이프 '한국차, 어디로 가나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의 세계 자동차시장' (1999.09.29)

연합뉴스 '<연합인터뷰> 김태구 대우자동차 사장' 1999.10.14

경기일보 '올해 신차시장 경쟁 치열' (2000.02.02)

매일노동뉴스 '대우차 노조, `독자생존 모색' 자구안 마련' (2000.12.21)

카라이프 '대우 매그너스 스포츠' (2000.09.23)

카이즈유 '쏟아지는 RV, 시장 달군다..'새천년 신차 경향' (2001.01.03)

다음카페 '대우차 신차 개발' (2001.02.22)

경남신문 '대우, 신차 개발 재개' (2001.02.22)

카라이프 '대우의 미개발차 지나친 대외 의존도, 무리한 투자가 원인' (2001.03.29)

사회평론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2001.05.25)

카라이프 'GM, 대우 바로보기④ 부평 기술연구소' (2001.11.12)

머니투데이 'GM "6주내 본계약..세금·우발채무 문제"' 2002.01.15

한국경제 '"부평공장 3년내 인수".. 대우車-GM 합의' 2002.04.09

조선비즈 '대우車 잇단 ‘출사표‘' (2002.04.11)

카라이프 '2002년 등장하는 국산.수입 새 모델 뉴 페이스 30여 종 출격 준비중'' (2002.05.07)

경향비즈 ''GM의 소형 중형차 개발에 중요한 역할'' (2002.05.12)

경향신문 '대우차 2~3년내 흑자 전환' (2002.05.28)

카라이프 'GM-대우 모터스 오토 & 테크놀로지 컴퍼니 마침내 윤곽 드러낸 대우자동차의 청사진' (2002.06.07)

2002년 특별단체교섭합의서' (2002.07.02)

레포트다운 'GM대우 경영 경제 리포트' (2003.??.??)


수정내역:

2023.05.14 인터뷰 및 정보 보충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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