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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Mar 26. 2016

#6-1. 파비안, 뻔한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

그 날의 인연을 말하다. (구, 비와 바람의 소나티네)

그 날의 인연을 말하다.

6-1. 파비안, 뻔한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    

 

  처음부터 가끔씩 그녀를 마주쳤을 때도 그랬고 함께 걷는 동안 내내 그녀가 동화에 나오는 무엇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떠오를 듯 쉬이 떠오르지 않던 그 무엇은 그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함께 걷기 전에는 잠깐씩 스치는 모습이었기에 몰랐는데, 시계를 한 번 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시계토끼였다. 어쩌다 시계토끼와 함께 걷고 있는 나는 졸지에 앨리스가 되었다. 토끼가 왜 자주 시계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지, 아니 대체 무엇이 토끼를 저렇게 여유 없게 하는지, 내 궁금증은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썰물 빠지듯 산등성이 아래로 빛이 사라지니, 밀물이 차오르듯 순식간에 어둠이 주변을 채웠다. 다행히 썰물이 빠지기 전에 우리는 마을에 도착했고 시계토끼의 시계는 다시 바빠졌다. 숙소에 벌써 도착해 있던 이안은 벌써 포도주를 따고 작은 모닥불까지 지폈다. 한쪽 구석으로 잽싸게 배낭을 던져놓고 불 옆에 자리 잡았다. 포도주 두 병을 다 비우니 사람들이 하나 둘 침대로 옮겨갔다. 얼핏 보아 비좁은 방 하나에 이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보니 그곳에서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오스피탈레로(스페인어로 hospitalero: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남자 봉사자, 여자는 오스피탈레라)에게 물세만 지불하고 대충 씻었고 이제 잠을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숙소 옆으로 창고 같은 빈 공간이 문 없이 있었으나, 꼭두새벽부터 출발하는 사람들로 일찍부터 시끄러울 것은 뻔했다. 이안에게 인사를 하고 배낭을 들고 나섰다. 내일 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조금 더 내려가니 꽤 아늑한 성당이 있었다. 처마도 깊고 두꺼운 나무기둥들이 나름 촘촘하여 바람막이가 되어 하룻밤 쉬어가기에 제격이었다. 자리를 잡고 침낭 속에 비집고 들어가니 금세 따뜻해졌다. 나른하여 눈꺼풀이 스르르 잠길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맙소사. 무슨 바람이 이렇게 많이 부는 거야.”


“왜? 시원해서 좋은데.”


“싫어. 너처럼 얼굴이 그렇게 주먹만 한 사람이 내 고충 따윌 알 리가 없지.

바람이 정면에서 물어오면 안 그래도 둥글넓적한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잖아.”



  바람이 내 머리칼을 건드릴 때, 바람 때문에 동그란 얼굴이 드러난다고 낮에 불평하던 그녀가 스쳤다. 그때 그녀에게 해줄 말이 있었는데, 못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제야 숙소에 도착하고 한 번도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도 온종일 함께 걸었는데, 그녀에게 내가 어디서 잘 것인지를 알려줬어야 했나.      


  언제 잠들었는지 몰랐던 것처럼 언제 시작했는지 모를 성당의 종이 일정 간격을 두고 울리고 있었다. 이 마을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마을인 만큼 성당 안에 종을 애지중지 관리하고 있을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스페인에는 마을마다 성당이 있고 그 성당이 부유할수록 실제로 타종을 하는데, 이 마을에서도 라디오로 종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타종한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어제 이 성당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타종 소리 덕분이었다. 종이 네 번째쯤 울렸을 때, 더는 그 아래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어젯밤 10시에 마친 타종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 것은 대략 새벽 4시부터로 추정된다. 반강제로 짐을 싸고 일찌감치 마을 어귀에 자리한 카페에 자리 잡았고 그 시각이 6시가 조금 넘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보통 1시간 간격으로 타종을 하는 것과 다르게 이 마을은 30분 간격으로 종이 울리고 있었다. 관광도시답게 다행히 카페는 일찍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구석에 자리 잡고 커피와 크루아상 하나를 주문했지만, 입으로 들어갈 리 없다. 연신 꾸벅꾸뻑 머리를 흔들어 대느라 벌써 몇 번이나 커피를 쏟을 뻔했다. 얼굴로 크루아상을 먹고 커피에 젖은 머리카락은 내 몸 가득 향수를 뿌린 듯 커피 향이 진동하고 있다. 덕분에 정신이 들어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출발하고 조금 지나자 뚱뚱한 초록색 배낭이 골목을 나와 잽싸게 언덕 위로 오르고 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으니 조금 웃음이 났다. 얼핏 보면 매우 빠른 걸음으로 열심히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좁은 보폭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사실상 이동거리는 별로 되지 않았다. 오르막이어서 그런지 빠르지도 않은 내 걸음으로 순식간에 추월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팡이로 소리를 내며 뒤따랐다. 탁탁탁. 

  지팡이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도 눈이지만 입까지 크게 벌려 속이 훤이 보일 정도로 놀란 눈치였다. 어차피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은 하나이고 헤어진다 해도 곧 다시 만나겠거니 했는지만, 생각보다 빨리 그녀를 만나 나 역시 의아하긴 했다. 그녀는 살아 돌아온 죽은 사람을 목격한 사람 마냥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오늘은 꽤 늦게 출발하네?”


“오늘 너는 꽤 이른 출발인데?”   


  

  그렇게 주고받은 이야기에 둘 다 웃음이 났다. 종소리 때문에 일찍 일어나 어쩔 수 없이 일찍 출발한 나, 마을과 성당을 둘러보고 피노키오 인형에 꽂혀 나무 인형만 여러 각도로 찍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느지막이 출발했던 란. 

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함께.



“너의 그 친구.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걸렸다는 그 친구, 그 뒤에 어떻게 되었어?”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그녀도 엉뚱하게 시작한 내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물고를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들려준 그녀의 이야기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이야기가 섞인 잔혹 동화와 같았다. 그것은 어릴 때 그림형제의 각색된 그림책을 보다가 성인이 되어 생각보다 잔혹한 원작을 읽었을 때 기분이었다. 단지 여유가 없었다고 느꼈던 표정 뒤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연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감정적으로 매우 섬세하여 공감능력이 나보다 뛰어났다. 내 친구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진심으로 그 친구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사실을 그대로 전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생각을 물었다. 

     


“나는 그 친구가 참 아파. 

서양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디에도 자신의 병명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을 거야. 병도 병이겠지만, 그에겐 감당할 수 없는 그 비밀이 더 아프고 고독했을 거야.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파.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감히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은 비밀을 품어야 하는 그 순간부터 상처보다 더 지독한 고독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거든. 그래도 그 친구는 다행이네. 자신의 아픔을 하소연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니까. 네가 대단해 보이고 내가 다 고맙네.”     


  이어서 그녀는 말했다. 내 친구가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다고 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그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했다. 그녀에게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틀렸다. 그는 후회했다. 그녀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자신에게 후회했다. 자신의 선택이나 그녀를 사랑한 것을 후회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자신보다 끔찍하게 사랑했던 것에 대해 후회했다.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욱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조금 위험한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자기애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누군가를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무모한 것은 없다. 내 친구는 후자였다. 그래서 친구는 사람들의 시선과 소문을 견디어내지 못 했고, 불행의 시작이었던 그 병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따라온 우울증에 발목 잡혀 자신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란이에게는 그가 우울증을 앓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연락이 두절되었다고만 했고, 그녀는 그가 연락을 끊도록 방관한 나를 나무랐다. 가슴에 품은 비밀보다 끔찍한 고독, 그것은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공감이었다. 그녀도 우울증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는 말이 내게 이런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서서히 그 고독한 터널에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아니, 빠져나오고 싶어 어지간히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진실을 전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를 나무라도록 두는 편이 옳다고 여겼다.     

 

  란이는 정말 사랑한다면 왕자를 위해 기꺼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인어공주처럼, 불 속으로 뛰어들어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마는 불나비처럼, 자신도 그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악마와 사랑에 빠졌던 것도 다 그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불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비의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은 자칫 자멸하기 쉽다. 그것이 헌신이고 아름답다는 것은 조작된 사상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내가 사라진 사랑은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내가 사랑을 믿지 않는 이유다. 신이 세상에 존재함을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내게는 그랬다. 사랑만큼 소모적인 감정도 없을뿐더러, 결혼만큼 미련한 계약도 없다. 사랑을 믿지 않고 결혼을 거부하는 독신자인 내게 그녀는 위태로워 보였다. 그 어떤 결과에도 그 사랑이 아픔이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빠져도 좋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는 추상적인 감정에 나를 걸지 않았다. 적당히 만났고 적당히 사랑했으며, 그리하여 이별 뒤 감당해야 할 시련도 없었고 흔한 후유증 없이 돌아서면 다시 웃었다. 나는 내 방식에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녀와 같은 사람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꽤 이야기가 잘 통했지만, 사랑에 관한 입장만큼은 흔한 교차점도 하나 없이 평행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비슷한 점이 많고 똑같은 부분들을 가진 사람들조차 자세히 살펴보고 뜯어보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쌍둥이들도 데칼코마니처럼 같을 수 없다. 그녀의 생각을 다 이해하기에는 내가 가진 직접적인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 들은 그들의 사연과 책에서 읽은 간접적인 경험으로 그녀를 공감할 수 없었다. 머리로 납득하여 진정성이 결여된 공감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 나는 빼곡하게 책들로 가득 차 있던 책장들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온갖 재미있는 장난감을 누이가 독차지했던 터라 책장에서 하나씩 꺼내 펴보던 그림책들은 어느새 무엇이든 일단 집고 보고, 읽고 보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책들은 곧 그림형제의 책들로 옮겨갔고, 이어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부터 괴테(Goethe)와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쉴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그리고 퀸터 그라스(양철북의 저자, 독일 현대작가, Guenter Wilhelm Grass)까지 온갖 종류의 책들을 읽었다. 왜 그렇게 어려운 책들이 어릴 적 우리 집 서재를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집히는 게 책이었던지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그중 쉴러의 책은 끝까지 읽는 것에만 의의를 두었음에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책 무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내 누이는 모래로 성을 만들고 자전거로 들판을 달렸다. 들판을 달리다 주어 온 나뭇가지나 이파리를 가지고 부모님께 끝도 없는 질문을 해대기 일쑤였고, 가끔은 죽은 벌레나 썩은 열매로 나를 놀리기도 했다. 그네에 앉아 발을 구르며 하늘의 구름에 닿겠다는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으며 그 목표는 곧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으로 이어졌다. 지금처럼 그때도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었다. 그렇게 나의 유년 시절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부모님 덕분에 재정적인 고민 없이 평범했다. 


  걱정이나 고민이 없었던 만큼 내 인생에는 뚜렷한 목표도 꿈도 없었기에 대충 학교에 갔다가 곧 나가지 않았다. 집안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돈도 벌어 보았다. 대충대충 하루를 보내 던 어느 하루,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소한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를 하며 살던 나의 절친한 친구의 고백은 내게 어떤 동기가 되었다. 적당히 살고 적당히 즐기면서 사는 것이 가장 평범하고 편안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어쩌면 내 삶에 장애가 되고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 슬픔, 고민들이 수많은 책들에서 주워 담은 지식으로 짐작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 진정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내게서 감정이 결여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이내 평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모두 소수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어차피 평범이란 것은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 다수를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도 인간인데, 그 기준을 정하고 나누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인 것이다. 가령,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 열 명의 아이가 있다고 하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의 부모가 모두 이혼을 한 경우라면, 이혼을 하지 않은 우리 부모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란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들은 어떤 삶도 평탄하게 흘러간 적이 없었다. 그녀의 표정 뒤에 숨겨있을 이야기가 궁금하여 시작한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어쩌다 내게 결핍된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이 길이 끝나면 뭘 할 거야?”


“계획 같은 건 없어. 이 길이 끝나고, 글쎄,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의 도시 부르고스(Burgos)에 들렀다 갈까 해. 내키면 부르고스부터 프랑스 길 한 번 더 걸을 수도 있고. 그건 왜?”


“그냥 궁금했어. 정말 계획도 없고 목적도 없나 해서. 우리나라에 유명한 스님 한 분이 강연하신 걸 들은 적이 있는데,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더라고. 넌 정말 행복하니?”


“글쎄, 나는 목적이 없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 답답함을 느껴본 적은 있는 것 같아. 그 답답함은 목적이 문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어서였던 것 같아. 그 스님이라는 분도 목적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게 아니라,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전날보다 훨씬 짧은 거리를 걸었지만, 어제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쉬면서도 끊이지 않았던 대화 때문이었는데, 그녀는 어제처럼 투덜거리지도 않았고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도착한 마을은 산티야나 델 마르보다 작은 마을이지만, 매우 아늑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거대한 예수 석상의 축소 버전 같은 예수상이 제일 높은 곳에서 마을을 한품에 안고 있었다. 그 옆으로 아기자기한 성당이 있었고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우리의 숙소가 있었다. 숙소는 예수상처럼 마을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경을 갖고 있었다. 마을에 슈퍼가 있었고 오랜만에 우리는 장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란이에게 부탁했다. 일주일 전에 먹었던 그 빨간 소스가 아직 남아있느냐고. 그녀는 뜯지도 않는 빨간 소스 튜브를 내게 두 개나 주었다. 그것은 고추장이라고 하는 발음하기 약간 까다로운 단어였다. 커다란 그릇을 두 개로 나누어 하나는 치즈와 리코다를 넣은 리조또, 하나는 추가로 란이의 한국 특제 소소를 섞은 매운 리조또를 만들었다. 이안이 이번에는 한잔의 물로 매운 리조또를 즐기겠다는 공약까지 걸었다. 내가 만든 저녁으로 배불리 배를 채운 다른 사람들은 포도주를 대접했고 란이는 내 옷을 세탁해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겨우 티셔츠 하나 빨면서 벌써 30분 이상을 세탁실에서 내 티셔츠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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