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이겨내야 넥스트 레벨로 가는 건데
요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기게 된다.
지금 보다 좀 더 어려운 아사나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
하지만 어려운 아사나들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가능하고
통증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신다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부상당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해요"라고.
이런 이유에서 나는 요가가 참 좋았다.
억지스럽게 완성된 모습을 강요하지 않았고
경쟁하듯이 누군가를 이기려고 아득바득하려는 마음 내려놓고 편안하게 흘려보내듯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음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이 상태에서 좀 더 진도를 나가고 싶으면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넥스트 레벨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 자기 전에 혼자 거실에서 요가매트를 펼쳐놓고 다리 찢기 자세를 시도해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매번 할 때마다 늘 막히는 그 구간에서 나는 멈칫하고 멈춘다.
남들이 나를 보면 다리 찢기가 수월하게 잘 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딱 어디까지만 되고 그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통증이 느껴질 때쯤에 나도 모르게 멈칫하고 멈추게 된다라는 사실을.
나는 계속 나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한동안 멈춰 있었다.
거기서 아주 조금만 더 그 경계를 넘어가기만 하면 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늘 거기에서 멈추고 만다.
"극복"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쉽게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단어라는 사실을. 그리고 아주 위대한 단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너무 아프니까.
그 아픔을 감당하기엔 심적으로 너무 힘이 드니까.
혹시 더 무리하면 다칠까 봐. 걱정되니까.
한때는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꾸준히 하는 게 어디야?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이렇게라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도가 훌쩍 나가 있을 거야.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늘 나는 제자리걸음이었던 것 같다.
아픔이 느껴지는 그 순간에 항상 모든 게 올스톱 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요즘 인기 있는 피지컬 100을 보면서 그 생각이 많아졌다.
피지컬 100에는 우리나에게 몸 좋은 사람들이 대거 나온다.
그들의 건강미 넘치는 육체와 퀘스트마다 괴력을 발산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들은 저런 몸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힘든 순간들을 뛰어넘었던 것일까를
경이롭게 바라보며 저 몸은 그저 시간이 흘러가듯 내버려 둔 몸이 아닌
매 순간순간 스스로 고통을 이겨낸 결정체.라고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들처럼 그런 울끈불끈 한 근육과 빛나는 바디를 가질 마음은 꿈도 꾸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요가 카테고리 범주 안에서 내가 원하는 아사나들을 원 없이 시원시원하게 해내고 싶다면 나도 어느 정도는 고통을 이겨내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다그침을 가지게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어제의 나보다 한 뼘이라도 조금만 더 해보자! "
고통에도 숫자가 있다면
어제보다 1만큼이라도 그 고통을 극복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세월이 지나도 계속 제자리걸음인 것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나아지는 인간이고 싶기에.
나도 이제는 정체기를 뛰어넘어 이제는 넥스트 레벨로 가자
요가원에 얼마 전부터 새벽반이 새롭게 개설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새벽반은 "아쉬탕가 마이솔"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아쉬탕가 마이솔은 선생님의 구령 없이
혼자서 수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는 수업시간이다.
나도 너무 새벽반을 듣고 싶은데
아직은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선생님 구령 없이도 혼자서 능숙하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걸 보면 수련이 아직 깊지 않은 것이다.
우선은 지금 당장 나의 넘사벽인 "새벽반"입성을 을 목표로
혼자서도 충분히 모든 아사나들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수련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아파도 조금만 더 참고 해보는 거야
어제보다 1도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