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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Sep 24. 2020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채식 영업법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

 내가 왜 크고 작은 귀찮음과 마찰을 감수하고 채식을 하는지,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찌 보면 나 역시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조금 외로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동료(?)를 만들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채식을 권하지는 못했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가장 많이 접했던 편견 중 하나가 '채식을 강요해서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권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해도 '고기는 이제 안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메시지 자체가 상대방에게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속상한 부분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채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맛있는 비건 식당을 발견하면 알려주거나, 좋아하는 비건 빵이나 디저트를 사 와서 함께 나눠먹는 정도가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또 하나의 강력한 편견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기도 한데, '고기 안 먹으면 힘이 안 나지 않아요?' '단백질 보충은 어떻게 해요?' 다. 나도 건강을 목적으로 채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서 배경 지식이나 논리로 무장하지 못했다 보니 이런 질문에 늘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채식을 오래 해온 나조차도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하면 마르고 왜소한 체형을 먼저 떠올리는 편견을 으레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오랜 착각이 최근에 깨졌다.




 넷플릭스에서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 워낙 입소문이 나있던 작품이었다.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근육질 몸매로 우리에게 각인된 아널드 슈워제네거, 그리고 성룡이 제작에 참여했다. 참고로 제임스 카메론은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를 계기로 환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 비건 채식주의자이며,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채식을 하고 있다.



 <더 게임 체인저스>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은  UFC 선수,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린 기록의 보유자,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달리기 선수, 사이클 선수 등이다. 이들은 모두 채식을 하지만 여느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고, 필요에 의해 커다란 덩치와 엄청난 근육량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다. 육류나 다른 동물성 성분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단백질 섭취나 근육을 단련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회복력, 지구력 등 전반적인 신체 조건을 월등히 효과적으로 높여주었다. 이들은 모두 육식하던 시기에 부딪혔던 자신의 한계를 채식을 통해 넘어섰다. 혈압 수치를 정상화하거나 혈액 내의 불순물이 정화되는 등의 효과는 덤이다. (물론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특정 필수 영양소를 꾸준히 빠뜨리거나 인스턴트, 탄수화물 위주로 매 끼니를 연명해서는 얼마든지 비만도 될 수 있고 건강도 악화될 것이다. 이들은 최상의 신체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잘 짜인 비건 채식 식단에 기반했다.)



 <더 게임 체인저스>를 통해  '지구는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답니다'라는 얘기를 처음 들은 것 마냥 평생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신화는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사실이 아니었다. "고기 안 먹으면 힘없을 텐데 어떡해?"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제가 비실비실한 이유는요. 고기를  먹어서가 아니라 운동을  해서더라고요~!"




 <더 게임 체인저스>가 신선했던 이유는, 이것이 채식을 권하는 전혀 색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채식에 입문하도록 하는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동물해방' 혹은 동물권에서 바이블로 꼽히는 다큐멘터리 <Earthlings> 등은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강력하다. 나 역시 이러한 통로들 덕분에 채식을 시작했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 안에서 직면하게 될 진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는 것이 불편해서 오히려 처음부터 접근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던지는 직접적인 메시지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은 물론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듣고 싶어 하지 않거나, 반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도 없는 걸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온 지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더 게임 체인저스>가 나타났다. '육식을 할 때랑 채식을 할 때 진짜 내 몸 상태가 다를까?', '고기 안 먹고 운동 한번 해볼까?'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도 채식을 시도하도록 길을 연 것이다. '더 게임 체인저스'를 검색해보면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더 게임 체인저스>를 보고 몸만들기, 체력 관리를 시도해본다는 후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에는 채식이 여성 위주의 식문화로 소비되어 왔다면 <더 게임 체인저스> 이후로는 채식과 운동을 병행하는 남성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채식을 알리는 데 있어 어느 방법이 더 낫고 못하고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채식이 널리 받아들여지려면 그 가치와 진정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고 깨닫는 한 가지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더 게임 체인저스>를 본 이후, 이제는 채식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더욱 많이 고민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꼭 한 가지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너무 많은 육식 소비가 기후 위기, 식량난, 동물 착취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관심을 갖고 시도해보게 된다는 것은 세상에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방송작가로 일해오는 동안 어느 프로그램을 맡아도 시청률 사로잡기 작전의 1순위는 늘 먹방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끼어드는 고기 먹방의 그림자 때문에 채식주의자로서는 방송작가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겠다는 고민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러나 <더 게임 체인저스>를 보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하고 반응하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용기가 생긴다. 이제는 채식주의자 방송작가에도 새로운 문이 열릴 타이밍이 아닐까? 이제 게임은 바뀌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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