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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Jun 14. 2017

혼자 다름이 누군가에는 행운이 될 수 있음에...

네잎 클로버


혼자 달라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다름이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될 수도 있으니...


네잎 클로버는 사실 돌연변이다. 유전되지 않으며,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세잎 클로버의 기형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행운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들과 늘 다르다 느끼며 괴로워했다. 남들과 다른 현실에 던져져 매일이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비참하고 처절한 매일을 보내며 만나는 사람들의 상황과 환경은 매번 나를 더욱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색각이상, 화상, 우울과 고민, 가정사, 가난.. 그리고 부모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과 형의 죽음,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다니던 회사에서의 고립 등 많은 것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형편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7살 때부터 그림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부모와 친구들이 곁에 없던 시절,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즐거움을 주던 것이 그림 외엔 달리 없었다. 자연스럽게 꿈은 그림을 좇게 되었지만, 가난으로 입시미술을 배워 대학에 진학할 방법이 없었다. 실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에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지만, 색각이상이 진로의 발목을 잡았다. 3살 때 집에 불이 나 얼굴에 입은 화상으로 인해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보다도 더 큰 절망감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림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흑백으로 그리면 되겠지. 펜화로 만화를 그리면 될 거야.

많지 않은 돈을 받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 웹툰이 생겨나며 채색이 되지 않은 그림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겨우 잡은 꿈을 놓지 않으려, 어떻게든 색을 RGB 코드로 외워가며 PC로 그려봤지만, 내겐 3달치 원고료 20만 원 남짓이란 현실의 벽이 있을 뿐이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 내 그림과 글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조차 보지 않을 것을 그리고 쓴다는 것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이 하나씩 꺾여가는 기분이었다.


글도 그림도 내 취향이 아니야.
그런 거 보고 싶지 않아.


그 사람과의 8년 남짓의 시간. 왜 사랑하는 사람조차 봐주지 않는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고작 이런 형편없는 그림을 그리면서 왜 끝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소주를 엄청나게 많이 마셨던 날. 집으로 향하던 골목에서 자신과 내기를 했다. 15년 가까이 이어지던 버릇이 그날 강한 충동을 일게 만들었다. 손목을 부여잡고 깊게 그어버린 후에도 손이 제대로 움직인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나머지 시간을 보내겠다. 

물론 그림만이 그런 행동의 모든 이유는 아니었다. 그간 다르게만 느껴왔던 비참했던 삶도 이유 중 하나였다. 

사람들에게 구조되어 응급실로 보내졌다. 수술을 하고 정신 병동에 입원을 권유받았다. 침착하게 설명하던 레지던트의 설명을 듣고, 고민 끝에 입원을 선택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꽤나 오래 치료를 받았다. 손목은 이상이 없었다. 무수한 상처가 시큰거리며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병원은 한가로웠고, 일상엔 많은 생각을 해볼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세상과 분리해 냉정하게 되돌아볼 시간이 많아졌다.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폐쇄병동에 머물며 생각을 거듭해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형편없는 그림을 그리면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간의 세월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나 이외의 것만을 탓해왔구나.
머저리 같은 놈  


작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멈춰 서 비참한 구렁텅이에 있지 말고, 기어 나오자 부단히 노력했다. PC로 그리던 그림도 다시 직접 종이에 그리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색에 대한 고민은 여전했지만, 수채화와 색연필을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를 위한 그림들을 그려보자고 다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그런 나의 변화 탓인지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바꾸고, 더 나은 그림들을 그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해주었다. 


2016년 6월 8일. 소묘를 배운다며 처음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한동안 쉬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날로부터 1년 여가 지났다. 나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작년 8월 7일, 수채화를 사용하며 두 번째로 그렸던 그림인 네잎 클로버를 다시 그려보기로 했다. 혼자 달라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렸던 그림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지만, 사실 이는 나를 위한 그림과 글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더 나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1년여를 돌아보며 다시 그린 그림이니, 열심히 그렸지만 사실 아직도 부족해 보이고 만족스럽진 않다. 그러나 다른 때보다 편하게 1년간을 돌아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렸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편하게 그렸다 말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혼자 달라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다름이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될 수도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행운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를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나란 사람을 만나 다행이라고 행운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을 쓴다. 우울하고 무거워 보기 힘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들을 많이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그리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너무나도 한정적이다. 


한정적으로 주어진 시간에 그림을 그릴 것이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리고 싶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요즘. 수채화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고 있다. 공부란 것에 끝이 없으니 오래 걸리겠지만, 나름 책을 보고 따라 해 보며 내 방식대로 그려보고 있다. 기본을 공부하기 시작하니 얼마나 내가 그동안 멋대로 그려왔는지, 또 오랜 기간 얼마나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얼마 전 3월경, 함께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더 많이 수채화 공부를 해서, 6월이 되면 더 좋은 수채화 그림을 보여줄게요.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이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 되어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네잎 클로버 그림이 그것을 의미하는 그림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조만간 그려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전까지 며칠이고 계속해서 수채화 공부를 하게 되겠지.


그리고 내년이 되면 다시 올해 그렸던 그림들 중에 하나를 다시 그려볼 생각이다. 

늘 혼자라 느꼈던 나의 다름이 지금 곁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친구와 사람들에게 행운이 되길 기대하면서 오늘 네잎 클로버를 다시 그린 것처럼. 


내년에도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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