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력가노루 May 13. 2024

::: 그림쟁이 급식이 샤대 간 썰 <5>


내 인생은 온통 그림이었다. 과학? 그거 그냥 과목 아님?


초등학교 5학년 때 짝꿍이었던, 이름도 기억나는 그 아이.

여느 책돌이(?)처럼 통통하고 새하얀 피부에 발간 볼.

어느 날 똘망똘망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며 과학자가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과학자가 뭔지도 잘 몰랐던 난 ‘과학자’가 꿈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고,

그게 뭐가 재미있겠나 싶은 생각뿐.


하지만 결국 이런 나도 과학의 세계에 빠져버렸던 건

공부에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는 중3 과학시간에 겪었던 매우 강렬한 느낌 덕분이다.


과학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지구에서 본 ‘금성의 공전운동’을 그려놓은 그림(이번 만화 4번째)이었는데

마치 지구에 살고 있는 내 앞에 진짜 태양계가 펼쳐진 듯

태양을 돌고 있는 금성이 3D로 보이는 착시에 큰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내 존재가 ‘태양계의 지구’에 사는 한 생명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실감했고

수업시간 중이었는데도 "우와!" 하는 감탄을 나도 모르게 해 버렸다.

그때, 우주를 좋아하게 됐다.

 

운명처럼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천문학이 있는 지구과학(선생님)에 마음을 홀랑 뺏겨버렸으니

당연히 나의 진로는 ‘천문학자’가 되었고 초5 때의 나를 비웃으며 과학자가 될 거라고 굳게 착각했다.

그 망상은 대학 1학년 첫 천문학 시간에… 읍읍.


샤대엔 똑똑한 사람이 참 많았다.

천문학은 특히나 물리와 수학을 잘해야 하는데

노노루는 고딩 때부터 수학에 가장 자신이 없었고,

그토록 배우고 싶어서 학교에 항의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던 물리 2도 공부하지 못했다.

이공계는 과학고를 조기졸업해 한 살 어린 친구들과 동기가 되는 경우가 흔한데

과학고에서는 물리 2와 수학 2와 지구과학 2 같은 고등학교 전 과정은 가뿐히 마스터하고

대학 수준의 수학·과학까지 공부하기 때문에 그들과 나의 출발선은 급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첫 천문학 시간이던 그날 수업이 끝나고 한 과고생이 던진 질문에

노노루는 순식간에 엄청난 벽을 느꼈고,

동기이자 경쟁자(?)의 도발(??)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웃긴 건 이 어린 과고생이 그 명석한 머리로 결국 졸업 전에 5급 기술고시에 합격해

천문학의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사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야!!! (이렇게 빨리?)

천문학자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와

탈과학(?)을 선언한 노노루는

원초적인 꿈을 좇아 미대로 전과하기로 결심한다.

이전 05화 ::: 그림쟁이 급식이 샤대 간 썰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