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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12. 2024

들어가며

 저는 현재 개발팀 규모가 5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에서 프런트엔드 엔지니어로 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4년 차를 앞두고 저는 프로그래머로 살아가기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며 먹고살아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대책 없는 각오에 대해 설명하려면 특별할 것 없는 제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운 좋게 좋은 부모를 만나 돈걱정 없고 인생이 평탄하기만 했던 저는 딱히 절실하게 하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그나마 책 읽는 건 좋아해서 과를 고를 때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곳을 골랐습니다. 그렇게 지방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학기 수강신청을 하고 나서야 문예창작학과가 글을 잘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매일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게 무서웠던 저는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꽤나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 힘으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4년 동안 꾸역꾸역 다녀 졸업했습니다. 남들이 치열하게 스펙을 만드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제가 졸업할 때까지 한 건 수업 듣고 도서관 가서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졸업을 한 뒤에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던 저는 과사무실에서 학과조교를 구하는 전화를 받고 조교로 일하기로 합니다. 일한 지 한 달 만에 조교는 대학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1년 뒤 교육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았던 저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집 근처 논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근무시간의 80% 가까이 누군가와 말을 해야 하는 곳에서 3년 가까이 일 하고 나서야, 그러니까 20대가 끝나가는 즈음이 돼서야 드디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근무시간에 한마디도 안 하고 싶다.


 이때의 저를 생각하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_장애해방 X 동물해방: Planet A 상영회 및 토크>에 패널로 참석했던 박경석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님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현실 앞에서 무기력을 느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이어진 답이었습니다. 행글라이딩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나서 5년 동안 집에만 있었을 때를 생각한다고. 

 <전사들의 노래>(홍은전, 비마이너, 2023)에 실린 인터뷰에도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는 고통스러운 것도 힘든 것도 없었어요. 삶이 무감각했죠. 시체의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으니까 고통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혼자 있을 땐 칼로 허벅지를 긁거나 담배로 팔뚝을 지져서 항상 퉁퉁 부어 있었어요. ……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니 사람이 무감각해지더라고요. 내 앞에서 누가 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거예요. 가장 큰 절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같아요.” 


 이 말을 들은 다음 날, 산책길에서 저는 이 대답을 곱씹다가 조금 울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만 싶었던 20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긴 했지만 당시 제 상태가 박대표 님과 같은 완전한 무감각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간간히 제 안에 떠올랐던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망이 분명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수능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서 어느 대학에 갈지 엄마와 대학 커트라인이 정리된 도표를 샅샅이 뒤져볼 때였습니다. 저는 그때 엄마에게 뜬금없이 철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말하고 나서 저도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무의식 중에 거기라면 제가 왜 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저의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헛소리로 치부되어 조용히 묻혔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의 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현실로 만들지 몰라 어쩔 줄 몰라했던 것이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흔히 그러듯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선택했던 겁니다. 그걸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말이죠. 


 내가 하고 싶은 건 언제나 비현실적이고 하찮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의 저는 항상 남들이 보기에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택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현실감각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낮은 나는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스스로를 못마땅해하고 수치스러워했습니다. 이런 자격지심은 계속해서 허황되고 거대한 선택으로 스스로를 몰아가도록 부추기기 마련입니다. 대단한 성취를 이뤄내야만 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부채감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 계획 없이 조교를 하며 시간을 버리는 게 부끄러워 딱히 가지 않았어도 될 대학원을 갔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가서 딱히 연구하고픈 주제도 없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부끄러워 전공과 그나마 관련된 학원 일을 했습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은 살아야겠으니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일, 그러면서도 내가 대학원에 들인 돈과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을 수 있는 일, 즉 교육 관련 서비스에 기여할 수 있는 일, 그러면서도 단순 노동에서 벗어난 일, 할 수만 있다면 타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

 저는 이런 욕망들을 동력 삼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 동안 매일 10시간 이상씩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프런트엔드 엔지니어가 그래도 가장 빨리 취업할 수 있다는 정보를 믿고 자바스크립트 문법을 익히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제 욕망에 충실해지며 얻어낸 과실을 다디달았습니다. 저는 전에는 제가 상상도 못 한 연봉을 받으며 재택근무라는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대부분의 근무시간에 원하는 대로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코딩을 합니다. 

 학원 일을 할 때보다 저는 확실히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퇴근, 주말 없이 프로그래밍을 해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는 압박감은 저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나자 프로그래밍을 하는 시간은 점점 짐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이었습니다. 

 지난 1년은 저에게 프로그래밍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2022년부터 비건을 지향하고 있었던 저는 프로그래밍으로 제가 추구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모임들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하루종일 좋은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좋은 글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저는 제가 이런 욕망과 닿을 수 있었던 이유가 비거니즘을 알게 된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먹는 게 달라지니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니 다르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먹는 게 달라진다는 건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합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는데 서툴렀던 저라는 사람이 스스로의 욕망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만났던 것들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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