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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12. 2024

나는 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나

제가 프로그래밍에서 멀어진 이유는 모두 시간에 대한 저의 감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 뒤늦게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우주에 보편적이고 유일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첫 장이 시작합니다.


A와 B의 시간은 다르다를 설명하는 그림,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시간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불확실한 인식에서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 불확실한 인식을 ‘희미함’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 시간의 화살표는 열이 있을 때만 나타납니다. 이처럼 시간과 열은 아주 깊은 관계에 있는데, 과거와 미래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때마다 열이 관여합니다. 클라우지우스는 ‘열이 역행 없이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는 상황을 측정하는 양’에 대한 개념을 도입하고, 여기에 그리스어로 ‘엔트로피 entropy’라는 명칭을 붙입니다.

 우리와 나머지 세상 사이의 특별한 상호 작용이 엔트로피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합니다. 이때 동일한 미시적 배열이 어떤 희미한 관점에 대해선 높은 엔트로피로 나타날 수 있고, 또 다른 희미한 관점에 대해서는 낮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을 희미하게 보는 우리의 관점에서 시간이 탄생했다는 것으로 저는 이 책을 이해했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 따르면 시간은 따라서 저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겠죠. 이렇게 생각하니 시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가는 유기체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에 소중한 게 없는 사람에게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아니 시간이 빨리 흘러도 그다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흘렀는지도 못 알아챌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딘 것이죠. 프로그래머라는 직군을 알았을 때 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딘 사람이었습니다.

 흘러가는 1분 1초가 아까울 만큼 무언가를 사랑하는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20대의 시간을 하찮게 흘려보내며 낭비했습니다.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이 저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저의 시간을 썼던 것입니다. 굳이 들어줄 필요 없는 남들의 넋두리를 잠자코 듣고 있는 사람이 그때의 저였습니다.  

 프론트엔드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장벽이 낮아서였습니다. 준비한 스펙이라곤 아무것도 없던 제가 당시 저에게 허용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을 때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 최선의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때는 모든 일이 다 무의미하므로 무엇을 하든 똑같다는 생각이었기에 취직할 수만 있다면 생전 관심도 없던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의미가 없었으나 단 한 가지 반드시 피하고 싶은 싫은 일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당시의 저는 진절머리 나게 하기 싫은 걸 안 할 수 있기만 하면 뭐든지 좋았습니다. 학원일을 하면서 사람 만나는 일이 끔찍하게도 피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적은 일이라는 것이 제가 원하는 유일하고도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바라는 게 많지 않았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라는 직군이 가진 장점들은 저에게 뜻하지 않은 횡재처럼 다가왔습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조건들이 많았습니다. IT 기업들이 재택부터 시작해 복지가 다른 비개발 직무보다 좋다는 점, 연봉이 높은 점, 일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점, 한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보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오히려 권장된다는 점 등 모두 탐나는 조건들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므로 받는 만큼 뱉어내야 하는 게 있다는 것 정도의 상식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뱉어내야 할 것이 바로 저에게 낭비해도 좋을 만큼 넘쳐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차피 크게 하고 싶은 일도 없으니 주말에 공부하는 게 크게 힘들거나 불만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손해 볼 것 없는 투자였죠.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언제나 저에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배운 것들이 돈벌이와 연결되지 않아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게 문제였을 뿐이었죠. 기타, 탱고, 차(茶), 한국어교육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면 제가 가고 싶은 회사와 일을 선택할 자유가 더 커진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일이 곧 개인의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영어 문서를 자주 접하게 된다는 점, 더 나아가 영어를 할 줄 알면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다른 직군에 비해 더 넓다는 점, 전문성을 갖고 싶은 분야의 선택 폭이 넓다는 점이 특히나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전공 유무가 취업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지점에 와서는 이것 참 횡재했구나 싶어서 같은 문과 친구들에게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있다고 열성적으로 권유하기까지 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해보니 프로그래밍은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이 좌절감을 맞보는 알고리즘 문제를 풀 때 저 또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건 제가 다른 분야에서도 크게 특출 난 능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야나 잘하는 사람은 많기 마련이니까요.

 6개월 정도 독학을 하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습니다. 70군데 넣은 이력서가 떨어지고 나자 제가 갈 수 있는 회사의 선이라는 게 얼추 보였습니다. 10개월 만에 이제 막 개발팀이 만들어지는 물류회사에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첫 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10개월이 지나고 지금 일하는 회사의 인턴공고에 지원했습니다. 사수가 있을 만큼 규모가 있고 재택 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알고 나서 전보다 점점 행복해지기만 하던 나날에 균열이 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더듬어 봅니다. 제가 ‘비건’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지점에 오면 먹는 걸 바꾸는 일이 이렇게나 파급력이 크구나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는 어떻게 비건을 지향한 게 시간에 대한 저의 감각을 바꿔놓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p.s. 여러분에게 시간은 어떻게 감각되나요? 여러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시간에 관한 좋은 자료가 있다면 공유해주시면 달게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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