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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스키 Oct 18. 2022

모두가 스테이크를 먹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비건 사람 친구입니다 ep. 결혼식

나 :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이 내 글 안 좋아할 것 같아. 그만둘까.

JD : 그게 무슨 소리야. 왜왜.

나 : 필자가 매력적이어야 그 사람 생각이 점점 더 읽고 싶어지잖아. 궁금해지고. 근데 나는 쓸데없이 진지하고 유머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 재미도 없어.

JD : 뭔 소리야.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엔 대꾸 않겠어. 그럼 십 년 넘게 네가 쓴 글 좋아하고 응원하는 나는 뭔데.

나 : 너는 내 친구고. 우린 마이너 감성인 거지.

JD : 야 세상에 마이너 감성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네 글을 좋아할 거야. 그러니까 노트에만 숨겨놓지 말고 세상에 보여줘. 잘하고 있어 지금. 쓰고 싶은 거 써. 쓰고 싶은 거.


   




안녕. JD. 우린 이런 통화를 종종 하지. 내가 찌그러질 때마다.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생일엔 생일 축하한다는 카드를 쓰는데 왜 결혼을 축하할 땐 카드를 쓰지 않는 걸까. 다들 쓰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안 쓴 걸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쓸게. 왜냐하면 너는 대기실에서 준비하랴 로비에서 손님 맞으랴 정신이 없었고 나는 그런 너의 옆에서 순간을 촘촘히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날의 기억을 새삼스럽게 공유하려고. 걱정 마. 물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야.






나는 인원수 제한 때문에 결혼식에 못 갈 뻔했지. 답례품 스텝으로 친구들을 부를 수 있다는 추가 안내가 없었다면 말이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답례품을 전하다 올라간 식장에서 너는 평온해 보였어. 예식은 차분하게 진행됐지. 네가 허리를 숙여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는 주책맞게 눈물이 날 뻔도 했는데. 왜 그랬을까.

 단체사진을 찍은 뒤 나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어. 물품을 정리하는 동안 너의 동생이 내려와 ‘얼른 식사하러 가세요’라며 재촉하기에 식당으로 향했지.


식당은 끝나자마자 내려온 손님들로 꽉 차 있었어. 하얀색 테이블보가 덮인 동그란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얼굴들이 기뻐 보였지. 메인 요리는 스테이크였어. 거리두기 단계 때문에 뷔페식이 아니라 고정된 메뉴를 서빙하는 것 같았어.

 마지막으로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다섯 명이었고 안내하는 직원은 다 같이 앉을 자리는 없다고 했어. 둘, 셋으로 따로 앉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당장은 두 명 자리밖에 없었지. 우리는 번갈아 가며 답례품 장소를 지키느라 예식도 따로 보았고 얼굴 마주 볼 기회도 없었는데 밥까지 따로 먹고 싶진 않았어. 나는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빈 테이블을 발견하고 물었지.


“저기 저 테이블은 못 앉는 건가요?” 직원은 “아, 저 테이블은 예약석이에요. 오실 분들이 있어서요.”라고 답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어. 우리는 입구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 볼지 나가서 식당을 찾아볼지 고민했어. 너도 알지. 이럴 때면 나는 내가 어서 결정을 내려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조급함이 생기곤 해. 친구들은 결코 그 책임을 나에게 떠넘기지 않지만 말이야. 결국 몇 분을 기다려 보다 우리는 난처해하는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어.


“저희 그냥 나가서 따로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채식하는 친구가 있어서 스테이크를 못 먹기도 하고, 나가서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을 듣는 직원 두 명의 눈이 동그래졌어.


“채식이요? 혹시 그럼 김OO님이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직원도 “김OO님이세요?” 하고 우리에게 다가왔어. 나는 ‘왜 내 이름을 알지?’ 싶어서 놀라며 물었지. “어떻게 아셔요?”


직원은 “아이고 왜 이제 오셨어요” 하더니 고개를 숙여 유니폼 상의에 꽂힌 조그만 마이크에 대고 “김OO님 오셨습니다. 준비해주세요” 했어. 나는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게 친구들을 봤지. 직원은 식당 끝 비어있던 테이블로 팔을 뻗어 우리를 안내하면서 말했어.


“신부님이 따로 요청하셔서 비건 메뉴로 준비해뒀습니다.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른 직원도 앞장서며 덧붙였어. “드시고 가세요.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린 식당을 가로질러 걸었고 드디어 모여 앉을 수 있었어.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이 녀석, 이름 말하면 된다고 왜 안 알려준 거야’ 싶어 너를 떠올렸지.

 하긴 너는 아마 신경 쓸 게 너무 많았을 거야. 일하랴 결혼 준비하랴 쉴 새 없이 바빴던 너의 지난날들이 생각났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가 샐러드만 먹고 배고픈 채 집에 돌아갈 장면을 떠올려 보고, 내 식사를 사수해줬구나 싶었지. 너는 평소에도 비건 식품이 새로 나올 때마다 링크를 전송해주거나 한 번 먹어 보라며 집으로 부쳐주는 친구니까.


놀랍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해서 안심하고 앉아 있는데 곧 화려한 반찬들이 테이블 위로 척척 차려졌어. 직원들이 차례로 다가와 친구들 앞에 메인 요리를 내려놓았고 나에게는 “곧 나올 거예요”하고 멀어졌지. 주방으로 향하는 직원의 뒷모습을 따라 돌아보자 안내를 해준 직원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가와 내 옆에 섰어.

 “김OO님이세요?" 나는 자꾸 호명되는 내 이름에 멋쩍게 웃으며 “네” 하고 답했지. “저희 쉐프가 특별히 알아보고 만들었습니다.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하며 직원은 하얀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려놨어.


접시에는 구운 새송이 버섯, 얇게 썬 아보카도, 푸릇푸릇한 잎채소, 구운 건지 튀긴 건지 꽃처럼 생긴 팽이버섯과 익힌 당근, 브로콜리 그리고 월남쌈처럼 각종 채소를 싸서 만든 예쁜 롤들이 하나의 작품처럼 포개져 있었어. 나는 처음 보는 비주얼에 선뜻 포크를 들지 못하고 연신 이렇게 중얼거렸지. “와 이런 거 처음이야. 진짜” 그리고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공들여 사진을 남겼어.


친구들은 재밌는 듯 웃으며 “김OO님 어여 드셔.” “김OO님 맛있게 먹어” “김OO님 요리는 어때, 맛있어?”하며 먹는 내내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여 말했지. 우습기도 했지만 감사한 마음이 컸어. 이 한 접시를 위해 몇 번씩 설명하고 재차 확인하고 부탁드렸을 네 모습이 떠올라 뭉클해졌지.

 근 몇 년 동안 비건이라 홀대받고 으리으리한 식당에서도 쌀밥에 김만 먹거나 샐러드만 먹거나 혹은 굶은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비건이라고 그렇게 대접받은 건 처음이었어. 그것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 혼자 특별한 요리를 받는 게 말이야. 덕분에. 너의 덕.


너는 어느새 애프터드레스로 갈아입고 저 멀리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어. 우리 테이블로 왔을 때 먹기 전에 찍어놨다며 사진 보여준 거 기억하지? 맛있냐는 말에 맛있다는 대답밖에 못했지만 그날의 감사함과 뭉클함을 이 편지로 대신하고 싶었어.

 이십 대에 이어 삼십 대에도 친구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다행이야. 우린 멋진 할머니가 되자고 약속했지. 사는 동안 내내 사이좋게 지내자. 결혼 축하하고. 친구 해줘서 고맙다.





추신. 너는 참 너답게* 아이들 이름을 지구와 세계라고 지어 놓았지. 머지않은 미래에 말이야. 지구랑 세계가 태어나면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 둘과 친해져 볼 거야. 그 나이대 사람을 몹시 어려워하는 편이지만, 살갑게 굴어 볼 거야.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 동물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동화책도 너랑 같이 골라 보고. 너랑 아이들이랑 식사하게 되면 비건 식당에도 가봐야지. 그리고 언젠가 학교에서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에 대해 접하는 나이가 되면 이런 난제를 겪고 배우게끔 한 것에 대해 어른으로서 사과도 할 거야. 그리고 그때까지 최대한 덜 미안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 거야.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지. 너랑 따로 또 같이.





*글에  제 친구 JD 대해 주석을 남깁니다. JD 지구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남 않는 고체 샴푸바 브랜드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비건 푸드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고요. 파타고니아의 철학과 결정을 존경하는 사업가입니다. 본인 가치관과 보람이 일과  붙어 있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굉장히 즐기고 사랑하는 편이에요. 저는 워커홀릭이라고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염려하듯 말하지만 사실 그런 면을 멋지게 여기고 있습니다.




커버 사진 : 그날 대접받은 비건 요리입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평소와 달리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만들어야 했을 쉐프님과 특별히 신경 써주신 직원 분들, 그리고 오늘도 가장 먼저 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를 내 친구 JD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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