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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스키 Oct 28. 2022

에필로그

비건 사람 친구입니다. 에필로그

긴 글을 차근차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글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매거진에 차곡차곡 모인 글을 브런치북으로 처음 묶어보는 저의 소감입니다.


 저에겐 비건 친구가 없습니다. 제가 극 내향인이기도 하고 취미가 글쓰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글을 통해 온라인에서라도 고충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친구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같은 경험을 한 이들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칭얼대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헌데 쓰다 보니 자꾸 욕심이 났습니다. 발행하고 보니 비건보다 비건 아닌 사람이 더 많이 보는 것 같았거든요.


고백하자면 비거니즘에 대한 개념과 필요성, 사람들의 무심함을 비판하는 글을 쓰고 싶은 날도 많았습니다. 인간의 먹거리로 소비되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동물들의 실상을 알지 않느냐고. 그들이 그렇게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소비를 멈춰야 하지 않겠냐고 외치고 싶었어요.


 저는 9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본 후 불가역적인 비건의 길로 뚝 떨어지듯 '순간이동'해버린 사람이기에 같은 영상을 본 사람들이 왜 나와 다른 길에 있는지 어리둥절했습니다. 묻고 싶었어요. 어째서 다른 길에 있느냐고. 왜 이 길로 오지 않느냐고요. 의문이 짙어질수록 실태를 잘 알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처럼 뒤통수를 맞는 방식으로 행동의 변화를 맞이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비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씨스피라시>, <문어 선생님> 같은 콘텐츠가 인기 다큐멘터리 리스트에 올라 있고, 기후위기 문제를 필두로 한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캐치프레이즈, 'ESG' 같은 철학이 투자에도 마케팅에도 흔하게 소비되고 있는 시대니까요.


 그렇다면 이미 정보와 영상은 흘러넘치고 데이터의 당위성도 충분한데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축산농장에서 양계장에서 실험실에서 의류공장에서 동물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왜 비건이 되지 않는지, 그 차이가 궁금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시작한 글이 '비건 사람 친구입니다' 입니다. 이 글엔 제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비건 실천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 음식과 관계와 배움에 대해 썼어요. 비거니즘에 대한 인상을 ‘어려운 것’, ‘불편한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사는 이야기’로 치환하고 싶었습니다.

 행여 서로를 다치게 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며 궁금한 점들을 묻고 해소할 수 있는 글을 짓고 그곳에 늘 있는 친한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에피소드 제목이나 본문에 동물 사체를 '고기'라 쓰고 소의 모유를 '우유'라 쓰며 언어의 한계*를 느껴 갑갑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이에게 닿고 싶었습니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이기에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없습니다. 원활한 소통이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나 언어는 사고를 제한하는 역할도 합니다. 동물 사체를 '고기'라 부르고 물에 사는 동물을 '물고기', '생선', '해산물'이라 부를 때 우리는 그들을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닌 그저 식품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끝까지 읽은 이에게 질문이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추신. 부디 우리의 호기심이 게으르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더 따뜻하고 다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끝으로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제가 닿을 수 있던 모든 비건 콘텐츠, 애써서 결과물을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 주신 분들, 온기와 영감을 건네주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혹독하고 잔혹한 세상에서 힘껏 따뜻해보기로, 최선을 다 해 온기를 퍼뜨려보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아요. 모든 비건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며 에필로그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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