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널 기다려
식물들에 순위를 매기자면 우습겠지만, 봄의 텃밭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식물을 꼽으라면 단연 우산나물이 내 머릿속 순위의 앞줄에 서있다.
우산나물은 작년에 처음으로 만나게 된 식물이다. 처음 나올때는 작은 선인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슬부슬한 하얀 털들이 햇빛에 빛나는걸 보고 있자면 새로운 생명체같은 느낌도 든다. 흙속에서 허연 털이 잔뜩 달린 동그란 머리를 내밀고 있는듯이 있다가 어느샌가 해와 온도가 마음에 드는 날에 쑤욱 자라나서 작은 우산들을 여기저기 세워둔다. 더운 여름이 되면 해변가의 파라솔들 처럼 커다랗게 펼쳐져 그늘을 만들어 준다. 지난 가을에 밭에 왕겨를 두껍게 덮어주는 바람에 올해는 우산나물이 다 없어진건가.. 왜 안나올까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인간의 부질없는 생각이라는걸 일깨워주듯 여기저기 우산나물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씨가 더 날아갔는지 새순이 작년보다 더 많이 나온다. 지금은 이렇게 반갑지만 여름이 되면 또 엄청나게 큰 우산을 펼칠텐데 이녀석들을 이곳에 다 두어도 될까? 하는 걱정도 잠시 스친다.
부슬부슬 하얀 털이 달린 우산나물을 보면서 이녀석들 사이로 걸어가는 작은 요정들을 상상하기도 하고 우주사막 어딘가에 살고있는 식물같기도 해서 해야 할 텃밭일은 까먹고는 자꾸만 우산나물 주위를 뱅뱅 돌며 가까이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혼자 웃고 있다.
나의 농사경험정도로는 우산나물처럼 특별한 외모를 지닌 경우가 아니면 식물의 새순으로 이녀석이 누구라는걸 알아보는게 쉽지는 않다. 봄에 내가 심은 씨앗보다 먼저 올라오는 잡초 - 사실 내 입장에서나 잡초지 걔들도 아주 멋쟁이다 -들을 캐낼때마다 혹시 잡초가 아닌데 내가 뽑아버리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매년 점점 알아보는 식물들이 많아지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구별해내는 걸 보면 시간을 헛되이 보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을밀텃밭 한쪽에는 딸기꽃이 만발했다.
날씨가 지금보다 더 추울때부터 녹색의 넓은 잎을 활짝 펼쳐두더니, 이제 노란 술을 가진 하얀 꽃을 보여준다. 이정도 스코어면 올해도 노지딸기를 원없이 먹게될것 같아 기분이 좋고, 뜨거운 날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때까지 딸기를 수확하던 작년 나의 우스꽝스럽던 모습이 스쳐지나가며 올해는 좀 더 새벽에 일찍 나와서 딸기수확을 해야겠단 생각도 한다. 작년보다 더 대가 두꺼워진 아스파라거스도 늠름하게 올라오고 수선화도 피었다. 농로를 따라 여기저기 핀 하얀 민들레도 오랑캐꽃도 아름답다.
가장 텃밭일 하기 좋은 계절이다.
텃밭을 하는데 제일 좋은때는 따로 없겠지만 봄의 텃밭은 여기저기 상상할 거리가 많은 멋진 농사터가 되어준다. 근심 걱정같은건 필요없다. 땅과 빛과 바람과 새순의 에너지를 왕창 얻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