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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Jan 06. 2022

겨울 밥자리

배고프면 우리집으로 와

과일이 좋다. 사과도 배도 좋고 딸기도 좋다. 제철 과일일수록 더 맛있고 좋다. 새콤한 맛이 나고 사각거리면 더더더 좋다.  운이 좋게도, 언니가 제주도로 이사를 가면서 계절에 맞는 귤들까지 제일 맛난때에 택배로 도착한다.  

제철에 맞는 맛난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건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항상 박스채로 배달되니 처음엔 맛있게 먹지만 가면 갈수록 멍들거나 시들어버리기도 해서 곤란하다. 조금 더 신선할 때 먹으려고 매일 매일 부지런히 과일을 먹고 있지만 사과 깡댕이나 물컹해진 딸기, 멍들어버린 귤같은것들은 계륵과 같은 존재다.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집에 더 맛난것들이 산더미니까.

과일을 먹으면 버릴것도 더 생기는것 같다. 내가 껍질까지 다 먹는편이라 다른집에 비해 쓰레기가 덜 나온다는데에 위안을 삼아야하나 싶지만, 혼자 과일을 먹는것은 한계가 있다.
 

요즘 작업실에 잘 안가고 있는터라, 동네 새들에게 인심이라도 써야겠다 생각하고 썬룸앞에 있는 새모이통 근처에 멍 든 딸기와 사과 깡댕이, 물러진 천혜향을 놔두었다. 우리 야옹이들이 먹다 남긴 고양이 사료도 함께 던져 두었다. 그리고 묵은 쌀도 한움큼 뿌려둔다.


새들은 겁이 많아서인지 새로운 물체가 생기면 처음엔 먹지도 않고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니 바깥에서 새들이 오고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엔 까치가 들러 고양이 사료를 먹고, 점심즈음엔 솔새나 참새, 딱새가 와서 쌀과 과일을 먹는다. 세시쯤엔 시끄럽기가 까치와 맞먹는 직박구리 소리가 들린다. 역시 쌀과 말캉한 딸기가 제일 먼저 없어지고 사과와 귤이 꽤 오랜시간 머물지만, 부리로 얼마나 야무지게 파먹는지 매일 아침 얼마나 먹었나 확인할때마다 뿌듯해진다. 잘 먹고 날아간다는 소식은 이녀석들이 날아가며 싼 똥으로 확인한다. 아마 새밥자리 주변은 새들의 똥때문에 기름진 땅이 될 것이다.

갑자기 새 밥자리를 작물을 키울 곳쪽으로 옮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밥자리가 달라지면 이녀석들이 또 겁먹을테니, 내년엔 베르가못이 건강하게 피는것만 바래야겠지(밥자리 바로 옆이 베르가못 자리이다)


지난해 핀 베르가못 꽃


겨울이라 새들도 고양이도 먹이구하기가 쉽지않다. 물을 마시거나 목욕이라도 할 수 있게 물을 받아둬도 금새 얼어버리니 이것도 참 곤란한 노릇이다. 그래도 시시때때로 물을 받아두거나 먹이를 뿌려둔다. 너무 배가 고프게 참지말고 우리집을 기억하고 와서 먹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얘들은 야생이니 알아서 살아나가야 하는게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곳을 제대로 된 야생상태라 할 수 있을까? 사람들 맘대로 지적을 나누어 가지고 콘크리트로 메워버려놓고는 알아서 살아내라고 하는건 너무나 잔혹한 일이다.

도울 수 있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돕는것, 그게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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