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뭐 일기예보를 보고 나온들, 맞은 적도 별로 없긴 하지만.
나는 사랑에 관대하면서 동시에 보수적인 편이라 흔히 말하는 어장관리를 전혀 못하고 ‘거 이제 좀 확실히 합시다.’하고 먼저 선을 긋는 편이다. 언젠가는 이런 적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애가 언젠가부터 나에게 이유없이 선물을 주거나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내길래 “혹시 너 나 좋아하니?”라고 동그란 눈으로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 애는 당황하며 아니라고 했고 나는 “그래, 그럼 나 좋아하지마. 나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거든.”이라고 못을 박아버렸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애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고백도 안 했는데 거절당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을거라고 툴툴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대방에게 허튼 희망고문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한 번 연애의 물결을 타기 시작하면 온몸을 싣는 스타일이라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연애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끔 헛다리를 짚은 적도 있는데 나로서는 조금 억울할 때가 많다. 분명 단둘이 밥도 먹고, 새로 나온 영화도 단둘이 몇 편 보고, 용건 없이 카톡을 주고받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연애라 부름 직하다 싶어 먼저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돌아보니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단지 호의였고 배려였지, 연애는 아니었다는 그들의 말에 허무와 억울함에 몸서리치는 건 언제나 적당히 눈치 보고 능숙하게 밀고 당기기를 못한 나의 몫이었다.
그때마다 내 기분은 이랬다. 환절기에 일기예보를 안 보고 나갔다가 다들 아직 코트를 입고 있는데 혼자만 반소매를 입고 있는 기분이랄까? 날이 따뜻한 줄 알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들고 나갔더니 손이 시리고 이가 덜덜거리는 기분이랄까? 뻘쭘하고, 창피하고, 일기예보는 왜 안보고 나왔나 후회도 되고, 추운 날씨가 야속하기도 한 거다. 아직은 추울 거라고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카디건이라도 챙겼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난 혼자 감기에 걸렸다. 일기예보를 안 본 내 탓이지 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칼바람이 불면서 따뜻한 봄날인 척 한 날씨에도 조금의 책임은 있지 않나? 나 혼자만 감기에 걸린 게 영 억울해서 말이다.
Ps. 뭐 일기예보를 보고 나온들, 맞은 적도 별로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