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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Oct 26. 2019

타인의 삶

아이고~ 김영감. 안 죽고 살아있었네. 

버스를 타고 소방서 앞을 지나다 소방관님의 신발 한 켤레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저걸 사진으로 찍고 싶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이내 나의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예의 없고 철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소방화는 그분들 삶의 일부고 목숨을 건 분투의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장비이다. 그런 그분들의 삶을 알량한 내 감성을 채우고자 함부로 소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예술가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달랐다.


그보다 오래전 어느 날 동네 공원에서 두 할아버지가 만나는 광경을 접했다. 정황상 우연히 만나신 모양이고 오랜만의 만남이었나 보다. A할아버지가 공원 가운데 자전거를 세우고 서 있었고 길을 지나던 B 할아버지가 친구분을 발견하곤 격하게 반가워하셨다. 


B할아버지: "아이고 이게 누구야, 이게 누구야. 김영감 아니야 김영감~"
A할아버지: (......)
B할아버지: "아이고 김영감!! 이거 안 죽고 살아있었네 안 죽고 살아있었어 축하해요~ 축하해요~"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큰 소리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B할아버지의 목소리만 들렸다. A할아버지도 B할아버지의 성화에 적절히 응대하고 계신 듯 보였다. B할아버지는 "축하해요" 대목에서는 박수까지 쳐가며 연신 어깨를 흔드셨다.


그 광경을 처음 목격했을 때는 할아버지들만이 하실 수 있는 유머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그즈음에 유튜브 추천 동영상에 '컬투쇼 베스트 사연'이 자주 올라오곤 했었는데 할아버지들의 대화를 사연으로 보내 김태균 씨가 성대모사를 하며 읽어준다면 얼마나 실감이 날까 싶었다. 만나는 지인들에게 내가 어제 공원에서 어떤 대화를 들었는지 아느냐며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이후로는 슬픈 감정이 오래 들었다. 두 할아버지의 삶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고 연민이나 동정 비슷한 감정까지 가졌다. 별 성찰 없이 생각나는 대로 사고가 흐르게 두었기에 다음과 같은 연상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할아버지 두 분이 '죽음'이야기를 하셨다 -> 어른들에게 '죽음'은 멀지 않은 이야기다 -> 그러므로 저분들은 슬플 것이다  -> 안쓰럽다 -> 할아버지 힘내세요'. 

그리고 두 분 대화의 빈 공간에 내가 생각해낸 이야기를 집어넣기까지 하였다. 

'어쩌면 B할아버지는 정말 오래 그리고 중하게 편찮으셨던 건지도 모른다. 저 말은 진심이다 ->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다.' 




소방서 앞을 지나며 한 차례 반성을 하고 나자 문득 공원에서 만났던 할아버지 일화가 떠올랐다. '슬프고 안타깝다'는 결론을 내렸던 나의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할아버지는 그저 원래부터 그런 대화를 스스럼 없이 나눠오신 것일 수도 있고, A할아버지가 연신 춤을 춘데서 짐작할 수 있듯 오랜만에 친구분을 만난 일이 자체가 반가웠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하신 말일 수도 있다. 물론 새로 내린 내 판단도 틀렸을 수 있다.

 

'평소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넘겨짚고 넘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담백하게 보고 넘길 것을 마음과 감정이 넘쳐 타인의 삶에 지나친 양념을 뿌리며 감정에 감정을 얹고 사연을 덧붙여 왔다. 특히나 평소 약간의 우울을 디폴트 값으로 깔고 있는 나이기에 별 것 아닌 사람들의 일을 보고도 숱하게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나는 비교적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자부심까지 가지면서......

  

혹여 나는 선해보이는 모양새를 하고 '타인 삶의 영역'을 침범한 예의없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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