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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Oct 30. 2019

작고 소중한 내 과자

저기, 우산 좀 치워주시겠어요?

엊그제는 오랜만에 비가 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일을 반기지 않으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 비가 오는 날엔 양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걷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겁이 아서 위협이 아닌 것도 경계를 하기에 저 멀리서 자전거가 오면 '혹시 저 자전가가 굳이 방향을 틀어서 충돌을 하면 어쩌지?'하고 걱정을 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 오는 날을 탐탁지 않아하는 주원인은 교통체증이나 물이 튀어 옷이 젖는다거나 하는 등의 일이 아니라 우산들(특히 장우산=장우산이라 쓰고 나는 '무기'라 읽는다)때문이다.


작게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사방으로 흔드는 일에서부터 뾰족한 우산 끝을 앞뒤로 흔들며 걷는 일, 우산을 팔에 가로로 끼고 반경 우산 미터(?) 안으로 접근을 제한하는 일 순으로 위협을 느낀다. 지하철에 서서 우산을 팔에 걸고 그 팔로 손잡이를 잡은 뒤 남은 손으로 스마트폰에 열중을 하고 있는 최고 수준의 경보 상황을 접하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흔들거리는 저 우산이 언제 나를 칠지 몰라서'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엊그제도 사방의 우산들을 최선을 다해 피해 가면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출근길에 들고 나선 우산을 그대로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덕에 적잖이 피곤해하며 발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산을 가로로 끼고 걷는 '우산 경보3'에 해당하는 아저씨를 만났다. '아씨 뭐람 (구시렁구시렁 나쁜 말...)'을 속으로 외치며 지나가다가 아저씨 품에 안긴 과자들을 보게 되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형태인 홈X볼을 맨 아래에 두고 그 위로 작은 봉지과자 두어 개를 쌓은 뒤 양 손으로 포옥 안고 계셨다. 그런데 그게 뭐 별 일이라고 피식 웃음이 나며 한껏 날이 선 마음이 녹았다.


'중년 아저씨와 과자' 라니. 과자 하나에 연령을 나누고 성별을 나누는 일은 불필요하지만 내 머릿속에선 '어린아이와 과자'라는 도식이 좀 더 익숙해서 지나다 만난 아저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저분도 '과자 맛'을 아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장바구니에 넣어서 왔더라면 더 편했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평평한 과자를 아래에 두고 나머지 과자를 차례차례 쌓아 올려 들고 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장을 볼 때마다 장바구니를 잊어 가방 안에 꾸깃꾸깃 넣거나 손에 들고 가는 내 모습이 떠올라 친근감이 들었다.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주전부리 하나가 주는 행복감은 생각보다 크다. 퇴근 시간에 보면 편의점을 지나는 사람 중 열에 여섯은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러곤 맥주 한 캔에 안주가 될 만한 간식 몇 개를 사서 나온다. 간식을 자주 사 먹지는 않지만 가끔 편의점에 들르면 과자를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곧 과자를 먹을 기대감에 씽긋씽긋 올라가는 입술을 간신히 내리며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럴 때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지겹지 않다. 엊그제도 과자를 폭 안고 가는 아저씨의 영향으로 근처 슈퍼에서 과자 두 개를 골라 왔다.


그러고 보면 일상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짜증을 내는 일이 꼭 그런 감정을 촉발한 '그 일'하나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간식 하나와 그로 인한 여러 기억들로 불편한 감정이 금세 수그러들 정도라면 그 짜증을 좀 넣어둬도 괜찮지 않을까. 이는 자꾸만 날이 서는 요즘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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