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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25. 2019

어떤 감정

어떻게 해야 괜찮아지는 걸까

학교 심리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을 해뒀다.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망설였을 텐데 신청메일이 오자마자 등록했다. 신청 당시 엄마와의 갈등이 있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괜찮은 척 말하지 않았을 뿐 속은 더 썩어가고 있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어서 '살기 위해'신청했다.


한 달 전 신청한 프로그램이었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결과를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 높은 우울과 불안 수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심각한 수준의 우울
매우 높은 불안.
자존감 지수는 4.
널을 뛰는 감정 그래프


병원에서 난치병 진단을 받으면 이런 느낌일까. 사람은 본디 자기 아픔을 제일 크게 느끼기 마련이므로 '어떤 선고' 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은 척하려고 안 하던 짓을 한다. 가방끈을 고쳐 메고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거리를 사고 문어빵을 사들고 들어갔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충동구매를 하다니.'하고 자책한다.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사기 위해 일부러 '우울'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오래전부터 인습적으로 선택지 중에서 가장 '불쌍해 보이는' 항목에 체크를 해온 건 아닐까

나의 선하지 않은 모습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마치 식탁에서 반찬을 고르듯이 우울과 불안을 선택해서 동정을 받고 싶은 것일까.

혹시 내가 나에게 우울과 불안이라는 체면을 걸고 있는 걸까.

심리검사를 할 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 평범하게 하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게 과연 맞을까.


제대로 된 검사를 받은 적도 없으면서 잡지식만 알고 있어서 심리검사를 하며 내가 나를 조정했다고 생각했다.

(191125_상담 전날 밤에 적은 글)


글을 쓰고 난 다음날 학교에 갔고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제 제법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 목까지 눈물이 찼고 여전히 어둡고 침울하고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울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괜찮다'라고 생각한 뒤로 학교에서만큼은 과할 정도로 빵글빵글 웃고 다니고 깔깔거렸는데

상담실 안에서 나는 여전히 상처 받고 소심한 아이였다.

엄마와 관련된 상처가 있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상처'가 나를 과하게 웃는 사람이 되게 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고,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다시 잡혀 들어가고를 반복한다.

세상 사람들은 천사라고 보는 그들이 입으로 쏟아냈던 무수한 악마의 언어들을 받아내고 있다.

위계질서가 엄청난 작은 사회 안에서 제멋대로 율법을 가져오고, 가장 힘이 약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고, 바보 만들기는 정말 쉽더라. 겪은 일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면 몇 명이나 믿을까.


상담은 엊그제 하고 왔다. 상담을 가기 전날 키워드 위주로 적은 글을 손봤고 감정을 조금 덧붙여 글을 완성했다. 상담의 효과를 느낄 새도 없이 한 2주일 동안 붙들고 있는 과제를 마무리하느라 브런치에 들어올 생각도 못했다. 상담이 끝나자마자 그 옆 열람실로 가서 과제를 시작해서 주말을 온전히 반납했고 겨우 지금 끝냈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나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핑계를 대기엔 충분하다. 저 위에 다섯권이 더 있다. 무거워서 바로 자료를 찾아 적고 바로 반납했다.

-브런치를 못한 데 대한 증거자료 제출완료-

아름다운 가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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