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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Dec 11. 2019

약자가 갖춰야 할 태도

약자는 '약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까?

이전 학학과 행정실에 있을 때의 일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장학금 지급 으로 재무부에 문의전화를 했는데 대뜸 들려오는 대답.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는 하지도 않고 혜택만 받으려고 해요." 자세한 사연은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들려오는 말에 잠깐 정신이 멍했다.


그럼 그 학생의 아버지가 해야 할 의무는 무엇이었을까?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고 단추 하나를 누르는 일' 그뿐이었다. 개인이 신청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웹상에서 단추를 누르지 않는 일은 다른 학생들도 종종 하는 실수였다. 오죽하면 학생복지부에서 따로 공지를 내렸을까. 장학금 신청이 안 될 때는 마지막 단추를 누르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으니 잘 안내하라고.


내 입장에서 누군가를 함부로 '약자'라고 정의 내리는 것조차 조심스럽지만,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이들이 갖춰야 할 태도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그들은 도움을 받는 자로서 마땅한 겸손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까. 혜택을 받는 처지이니 적시에 신청절차를 마쳐야 하고, 알아서 실수 없이 일을 능숙하게 해내야 하고, 그에 적합한 인성도 갖춰야 하는 걸까?


어제 수업 중에 인간은 복합적이라서 좋거나 나쁘다와 같이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애초에 복합적이어서 끝까지 나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인간인데 왜 약자는 온순하고 착하기를 원할까? 착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심지어 성인군자도 완전히 착하지는 않았다. 가령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년소녀 가장이라면 반드시 동생을 잘 챙겨야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구김이 없이 꿋꿋해야 한다. 구김이 없이 꿋꿋하면 '어린것이 안쓰럽고 대견하다'며 근원을 모를 지지를 받는다.


그리고 각각의 다양한 얼굴을 한 이들이 왜 기초생활수급자들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여야 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부모도 심지어 그 흔한 아저씨라는 말도 아닌 아무렇게나 뭉뚱그린 듯한 기초생활수급자 '들'에 속해야 했는지. 그때 당시는 연말이었고 재무부엔 각종 업무가 겹쳤을 거고 비슷한 문의가 여러 번 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날이 선 목소리는 전화를 건 내가 아닌 그 학생의 아버지를 향해야 했을까.


일이 있었던 시기가 비슷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빨래를 널다가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조금 더 기억을 되짚으니 그때 나는 그 직원이 나에게 화내지 않은 데에 고마워하며 전화를 끊었었다. 일을 해결해주어 감사하다며 전화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연신 머리를 조아리던 그 학생 아버지는 내가 받았어야 할 신경질을 당신이 대신 받은 줄을 알기나 하실까. 대뜸 전화해서 업무 너머의 일을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는 반면 딸뻘인 내게 필요 이상의 겸양을 내보이던 학부모가 있었다. 그것이 '약자가 갖춰야 할 바람직한 얼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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