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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Dec 14. 2019

콩나물밥과 여타 돌솥밥

설명하긴 어려운데 해내게 되는 것들

네가 그동안 먹은 콩나물을 차례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


콩나물밥, 콩나물국밥, 콩나물 라면, 콩나물 찜, 콩나물무침.

어디 가서 공공연하게 '저는 콩나물을 좋아해요'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배는 고픈데 거리가 없을 때 먹는 음식을 보면 콩나물이 많이 들어간다. 물론 "치킨을 먹을래, 콩나물을 먹을래?" 하고 물어보면 콩나물을 먹겠다고 할 일은 없겠지만 콩나물이 있으면 없던 입맛도 돌아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정도면 콩나물을 좋아한다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또 그렇게 말하기는 멋쩍다.


여러 콩나물 음식을 나열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콩나물밥이다. 압력밥솥에 쌀과 같이 콩나물을 넣고 해 먹는 콩나물밥도 맛있고, 작은 솥단지에 따로 해 먹는 콩나물밥도 맛있다. 전자는 콩나물이 푹 익어서 고소한 콩나물즙이 밥에 배어 있는 맛이 있고, 후자는 아삭아삭한 콩나물을 맛볼 수 있다. 깨와 참기름과 파를 아끼지 않고 만든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금상첨화다.


한때는 콩나물밥에 정말 푹 빠져서 매 끼니 콩나물밥을 해 먹었고 굳이 양념장까지 새로 만드는 수고를 들였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네가 그동안 먹은 콩나물을 늘어놓으면 지구 한 바퀴도 더 돌겠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매일같이 먹었지만 솥단지에 콩나물밥을 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물 양을 맞추는 것 이외에도 불 조절을 잘해야 콩나물은 아삭아삭하게 익고 뜸도 잘 든 콩나물밥을 맛볼 수 있다.


글의 전개를 따지자면 여지껏 콩나물밥 달인인 척을 했으므로 '콩나물밥 잘 짓는 법'을 알려줘야 할 텐데 딱히 그런 건 없다. 알긴 하지만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쌀을 씻은 뒤 적당량의 물을 솥단지에 넣는다. 하얀 밥물이 뽀글뽀글 올라올 때까지 중불을 유지하다가 적절한 시기가 오면 뚜껑을 열고 씻어놓은 콩나물을 넣는다. 콩나물을 넣은 후엔 약불로 익히다가 밥이 다 되어간다 싶으면 잠깐 동안 불을 세게 올려준다. 불을 끈 후 밥에 뜸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맛있게 먹는다.


요리 블로거였다면 빵점인 레시피다. 실제로 밥을 지을 때 내가 저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밥 짓기를 시작할 땐 엄마한테 물어서 배운 대로 했던 거 같은데 변형이 되어서 '저 레시피는 엄마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자주 해 먹다 보니 익히게 된 방법이고 아마 그때그때 달라질 것이다. 때마다 다르고 전문가가 보면 순서와 불 조절이 틀렸다고 할지 모르지만 끼니마다 맛있는 콩나물밥을 해 먹고 있다.


'어쩌다 보니 몸에 익어서 하게 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매년 연말이 되면 나이는 한 살 더 먹는데 생각하는 거나 하고 있는 일들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여 씁쓸했었다. 게다가 애써 꾸미고 가꾸는 성격도 아니라서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모습이 중학생 때랑 똑같다. 큰 맘먹고 미용실에 가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잘라 달래도 몇 달만 지나면 잔머리가 나온 것까지 그때 그 모양 그대로가 된다.(동안이란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는 사람 만나는 게 편해졌고 자연스러워졌다. 어떤 책 제목대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도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다. 들을 것은 듣고 넘길 것은 넘기고 양보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일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꼭 이 방법만이 다가 아닌 것을 깨달았고 상황은 같지만 좀 더 쉽게 처리하는 법도 익혔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삶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고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하지만 결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해도 그동안 얻어맞으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인생의 콩나물밥을 지으면서 무수히 태워도 먹고 설은 밥도, 진밥도 해본 덕일까.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밥 이외에 버섯 솥밥, 영양밥, 곤드레나물 솥밥 이런 거도 하게 되겠지.


아니 저 여타의 솥밥은 지금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인생 말고 요리에 한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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