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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Dec 19. 2019

요양원의 풍경

삶의 따뜻했던 기억에 머무르셨으면

요양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기 전부터 긴장해있었다.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본 경험이 적어서 나의 어색해하는 행동이나 표정이 그분들께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요양원 곳곳은 직원카드를 찍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배회하는 어르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탔고 배정된 층에 내렸다. 원내 프로그램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모두 로비에 나와 계셨다. 옅은 침 냄새가 풍겼고 창으로는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썩 바람직한 반응은 아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었으므로 특별히 해드릴 케어는 없었다. 식사하실 때만 좀 도와드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말벗을 해드리면 되었다. 그게 가장 큰 봉사라고 하셨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녔다. 겨울이었고 긴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는 길엔 피곤해서 꾸벅거리며 졸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르신들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 익숙해졌다. 가끔씩은 치매에 걸려 같은 말을 계속하시거나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게 편했다. 복잡하고 힘든 얘기 대신 할머니랑 둘이 앉아서 허공으로 흩어져도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들을 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도 말했다. 할머니는 어차피 잊어버리실 테니 내 심경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응응 하며 손을 쓰다듬어 주실 때는 울컥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어르신들의 얼굴은 다양했다. 표정도 다 달랐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화난 표정으로 내내 계시대서 그분의 삶 전반이 잘못되었다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그저 고단한 생애를 살아낸 흔적만 남아있었다. 행동도 저마다 달랐다. 계속 화를 내는 할머니, 매 식사 때마다 음식이 짜다며 '짜- 짜-.'를 반복하는 할아버지, 인생의 황금기에 머무르며 끝없이 자랑을 하던 할머니, 침으로 뭉친 휴지 조각을 꽁꽁 싸 두고 약이라며 자꾸 권하던 할머니.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삶 안에서 가장 슬펐을 기억’에 계속 머물고 계신 할머니셨다. 시간이 오래되어 사연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어른은 하루 24시간을 내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고 있었다. 슬퍼하셨고 끊임없이 불안해하셨으며 두려움에 떠셨다. 옆에서 말벗을 해드릴 때도 식사를 챙겨드릴 때도 심지어 자식들이 찾아왔을 때도 슬픈 시간 안에 매몰되어 그 사연만을 읊으셨다.   


어떤 분은 행복했던 기억에 머무르고 어떤 분은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내내 산다. 그게 의문스러웠다. 저분이 항시 고통 속에 머무르는 건 평소 삶 안에서 고통만을 생각해서 그런 걸까. 평생의 삶이 슬프고 고통스러워 그러한 감정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담 생의 마지막 시기만큼은 행복하면 안 되나. 아니면 그냥 병의 작용에 따라 무작위로 기억이 소환되는 걸까. 그럼 너무한 것이 아닌가. 평소 습관이든 무작위의 결과이든 모두 잔혹하기 이를 데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다.


글은 이렇게 썼으면서도 지하철에서나 동네 공원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고운 표정을 짓지는 못한다. 대낮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어르신들이 멀리서 보이면 슬며시 피해 간다. 그저 요양원에서의 기억 때문에 ‘아주 엇나간 싹퉁 바가지 없는 젊은 놈’만은 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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