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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Oct 13. 2019

추억의 자리를 새로 채울 수 있을까

자연스레 흩어지는 것들을 보내는 일..

내가 무심하게 자주 쓰는 말을 반추해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나를 필터링해보면서는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어...'를 붙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가령 "포인트 적립하세요?"라는 직원의 물음에 "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그런데 '어?'외에도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고 한다. 친구에게서 들은 말인데 바로 '의미 없어.(혹은 '있어'로도 대체 가능)'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의미 없다'는 말을 하게 될 때마다 인식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자주 쓰긴 쓰고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바로 '의미'이다. 삶 안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기준이 되었던 것은 '이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의미가 없는 일을 하기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지만 문제는 내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책상 정리를 하다 보면 의미가 있어서 버리지 못하고 놓아둔 그림, 자료, 쪽지, 편지 등등이 정말 가득하다. 상대가 한 별 뜻 없는 말에 의미를 부여해서 소설을 쓴 적도 많다. 친구가 한 말, 교수님이 지나가면서 하신 말들에 의미를 부여고 그 말들을 계속 곱씹으며 오래도록 기분 좋아하거나 우울해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어제저녁에 있었던 어머니의 통보로 갑작스레 핸드폰을 교체하게 되었다. '가족이 모두 통신사를 이동하게 되었으니 너도 내일 아침에 가서 핸드폰을 바꾸라'라고 하셨고 아침에 집을 나서 핸드폰을 바꾸고 왔다.백업 기능이 있어서 웬만한 정보들은 다 옮겨 주셨는데 '카카오톡'은 잠금 기능이 설정되어 있어서 옮기지 못한 체 받아왔다. 새로 바뀐 핸드폰에는 친구와 나눈 대화 내용이 사라져 있었다. 카카오톡에 로그인해서 대화 내역을 받으면 될 일이지만 선천적으로 그러한 툴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친구 목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에 만족하며 그냥 쓰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친구와 나누었던 '의미 있는' 대화들을 더 이상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보면서 대학시절의 일을 추억하기도 하고 함께 먹었던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돌이켜야 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 어려워졌다. 친구와 했던 대화를 보다가 까마귀 소리를 잘 내던 선생님을 떠올리며 깔깔거릴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없어졌다. 혹시나 싶어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었던 '그놈' 과의 대화 내용도 사라져 버렸다. '그놈'과는 '의미 있는 대화'의 물꼬도 못 터봤지만 채팅창 목록에서 사라져 버리니 은근히 섭섭하다.


예전 핸드폰이 남아 있으니 보려면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사라진 추억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나간 카톡 대화 내용을 읽어본다'는 사실만으로 변태(?) 같은데 굳이 예전 핸드폰을 켜서 대화 내용을 본다고 하면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 것 같다. 건너 건너 알게 된 공대생들은 일상 대화를 하면서도 '실험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조건들'을 제외해버리던데 내가 너무 '찐眞문과생'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머릿속 생각들을 목록화해서 삭제해버릴 수는 없을까? 정보가 과도하게 든 핸드폰이 무거워지듯 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생각들이 차고 넘치면 나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왜 이렇게 붙들어 놓고 싶은 것이 많은지. 타고난 성격 탓인지, 점점 서늘해지는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놓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먼 훗날 다시 마주치게 될지 모를 의미 있던 추억들 앞에서 초면인 양 낯선 얼굴을 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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