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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Oct 18. 2019

아이와 어른 사이 줄타기는 진행 중

'인형 머리 감기기 세트' 찾습니다

우리 집에 외삼촌이 오는 날은 어린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집에 와도 괜찮은 손님은 외삼촌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다른 손님이 오면 방 안에 들어가 조용히 놀아야 했으므로 쪼르르 달려가 안길 수 있는 삼촌이 오는 날이 좋았다. 삼촌 손에 들려 있곤 하던 크고 작은 선물은 덤이다.


삼촌 방문과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의 일이다. 삼촌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기보다 삼촌의 손에 들려있던 인형세트가 생각난다. 상자 안에 인형이 얌전히 담겨있고 그 옆에 샴푸(혹은 물비누 같은 것) 두 개가 나란히 들어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장난감에 눈을 반짝 빛냈지만 장난감을 손에 들어보지도 못했다. '애들한테 뭘 이렇게 비싼 걸 사주냐'는 엄마의 말씀에 곧바로 삼촌 손을 잡고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작은 경찰차 장난감으로 바꿔왔다. 왜 경찰차를 골랐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인형을 갖지 못하게 된 실망감이 커서 눈에 보이는 아무것이나 가리켰을 것이다.


엄마보다 섬세하고 눈치가 빠르던 삼촌은 조카의 서운한 표정을 눈치챘을 법도 한데 묵묵히 나를 데리고 완구점으로 향했다. 조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였다기보다 나이 차이가 꽤나 나던 누나의 명을 거역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우리 엄마이지만 엄마는 성격이 유한 편이 아니었고 바쁜 외할머니를 대신 해 엄마가 삼촌을 키우다시피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글을 쓰며 생각하니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을 삼촌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한 엄마의 마음이 이해 되기도 한다.


자그마한 경찰차 장난감은 우리 집에 오래 있었는데 인형을 갖지 못한 나의 아쉬움은 이내 슬픔으로 변하여 그보다 더 오래갔다. 그 슬픔은 크면서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고 성인이 되어 심리 프로그램을 하는 와중에 왈칵 눈물을 쏟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좀 괜찮아지고 나서 엄마께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그때 갖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냐.'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눈치는 빤해서 엄마의 전화통화 내용이나 아빠와의 다툼 내용을 다 듣고 있던 나는 '그렇게 비싼'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떼를 쓸 수가 없었다. 마이너스 통장의 존재와 돈이 없다는 엄마의 탄식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게 했다. 삼촌의 돈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 돈은 '웬만하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떼를 써봤다고 해도 한창때이던 서른 초반의 엄마와 현재의 엄마가 같을 거란 보장도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트에 가면 완구코너를 꼭 둘러보곤 한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자석 낚시 놀이 장난감'이나 '앙앙 짖으며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은 지금도 나오는데 내가 갖지 못했던 인형세트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돈은 웬만하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고수하는 나는 허투루 돈을 쓰지 않지만 그 인형세트를 보게 된다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았지만 아직 그 장난감을 발견하지 못한 탓에, 나는 지금도 '장난감 코너를 서성이는 어린아이 같은 어른'과 '잽싸게 엄마 눈치를 보던 어른 같 아이' 그 어디쯤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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