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를 잘 따라가는 편이 아니라서 저 유행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또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는 잘 모른다. 지인들이 있는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짤로 접하면서 ‘참 말도 잘 지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을 거 같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있었다가 없어진 것 중 어느 상황이 더 견디기 어려우냐고 묻는다면 ‘있었다가 없을 때’가 더 힘들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대답하겠다.
하지만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 대상을 삶에서 겪는 여러 문제들이라고 정의한다면 대답은 조금 달라진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문제 상황이 아예 없었던 것’보다는 ‘있었다가 없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티가 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리저리 재고 곡해하는 나와 달리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 선택을 앞두고 몸을 사리지 않으며 주저함이 없는 이들, 그들 특유의 밝은 에너지, 가끔은 상담을 받고싶다는 내 말에 자신은 상처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고 답하는 친구들.
여간해서는 남에게 털어놓지 않았을 문제들을 글을 쓰면서 털어놓는다. 털어놓은 문제 상황의 뿌리가 깊을 때는 며칠간 잠수를 타며 숨어있는 편이 좋다. 단순히 글에서 서술한 문제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도 긴 시간을 보냈다. 화가 났었고 무기력했다.
긴 시간을 굴속에 있다가 ‘그래도 그런 시간들을 겪고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아서, 크게 엇나가지 않아서, 깊은 바다와 같은 공간에서 여러 감정을 경험해볼 수 있어서.
물론 ‘아무 문제도 겪지 않을래? 겪었다가 극복 비스무레한 걸 해볼래?’라는 물음 앞에서 흔쾌히 후자를 택하지는 않을 거 같다. 나약한 인간이라 ‘그 시간들이 약이 되었다’ 고도 못하겠다. 그저 위에서 밝힌 바대로 ‘다행’ 정도가 적당하다.
글 쓸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을 꽁 닫고 지낸 시간 동안 N플릭스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영화 ‘말레피센트’에서 요정은 오로라 공주에게 ‘슬픔을 겪지 말라’는 축복을 전한다. 말레피센트는 사랑하던 남자의 배신에서 비롯된 여타의 감정들을 겪는다.
티 없이 맑기만 했던 오로라 공주보다 말레피센트의 경우가 더 인간적이고 멋있었다. 문제를 처음부터 겪지 않았던 것보다 겪었다가 극복한 경우가 더 멋있지 않을까.
물론 나의 경우엔 완전한 극복이라고 하지는 못하겠고 언젠가 이 공간에 다시 들어와 또 글을 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