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삼키며 잠에서 깨고, 또 다른 약으로 잠자리에 든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에 먹혀버리기에. 낮의 잡음에 묻히는 게 두려웠고, 밤의 적막에 삼켜지는 게 무서웠다. 아무것도 없어지고, 나조차 없어지고. 죽음의 위장 속에 나 홀로 떨어진 것만 같아서. 죽고 싶은 나는 살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 나는 도망쳐야 했다. 내가 만들어내는 죽음의 이미지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먹는 약에 커다란 마법이 담겨있거나 하지는 않다. 그저 안정제일 뿐이며, 조절제일 뿐이다. 어쩌면 약이 아니라 그것을 삼키는 일련의 행위에는 마법이 녹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놀라울 정도로 빨리 효과가 나타나곤 하니까.
약과의 동침을 후회하거나 자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죽음의 존재를 실감한 자라면 누구나가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단지 종종, 아직 약을 먹기 전, 약봉지를 집고 비닐을 찢는 동안, 물 한잔에 약들을 삼킬 때까지, 어떠한 의문이 떠오르곤 한다. 이 동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어쩌면 나는 내 몸이 죽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이퀼리브리엄>처럼. 그렇다면 이 모든 의미들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난 그저 의미 없는 행동을 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요즈음은 거의 매일 꿈을 꾼다. 내 마음이 꿈속으로 도망치려 하는 걸까. 약을 먹어도 잠들기가 어려워지고, 약을 먹기 위해 일어나기가 어려워졌다. 세상에, 반은 좋고 반은 안 좋구나. 꿈을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잠에 드는 게 이리도 괴롭다니. 못 깨어나도 좋다. 영영 꿈속에 남게 되어도 좋다. 우선은 잠에 들고 싶을 뿐이니까. 약을 삼키고도 아직까지 깨어있는 내게, 혹은 나와 같이 삶을 떠도는 누군가에게, 이러한 푸념이 부디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