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이는 오늘도 커피를 내립니다. 기업 직원을 위해 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 중입니다. 미정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바리스타 과정 수업을 들었어요.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좋아하는 일로 꿈도 이루고 싶어 바리스타 1급, 2급 자격증도 땄어요. 처음부터 바리스타로 근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미정이 어머니가 직장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와서 몸이 약한 언니와 남동생을 돌보고 있었어요. 세 남매 중에 미정이가 제일 야무지고, 씩씩했습니다. 빨리 취업해서 어머니에게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부천에 있는 핸드폰 부품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비록 하고 싶었던 바리스타는 아니었지만, 집에서 가깝고 회사 분위기도 좋았어요. 아주머니들이 일을 잘 가르쳐 줘서 금방 일을 배울 수 있었어요. 6개월 정도 일하는 중에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아주머니도 하나, 둘 그만두기 시작했고요. 미정이는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1년 뒤늦게 직업 준비를 위한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수업을 들었어요. 서비스 직종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며 커피, 과일 주스 등 여러 음료를 만들어 직접 손님에게 제공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이젠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뤘지만, 다음 꿈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제가 번 돈으로 친구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요. 예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핫하다는 장소에 가서 멋진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싶어요. 새해에는 남자친구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헌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일을 하며 지낼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천천히 걷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겨하는 지헌이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어요. “기자 도전!” 어느 날 작은 기업의 기자 모집 공고를 봤습니다. 취재를 위해서는 지하철도 타야 하고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는 일도 많을 것 같아 처음엔 주저했습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므로 도전해보기로 하고 면접에 응시했어요. 결과는 합격이었어요. 처음에는 수습기자,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수습’이라는 두 글자를 떼고 당당히 이름 석 자 앞에 기자라는 직함을 달 수 있었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배우도 인터뷰하고, 멋진 미술 작품전시회 등의 정보도 기사로 썼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생산한 다양한 뉴스 중에 유익한 기사를 선정해 노인이나 장애 학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흥미와 보람을 느꼈지요.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일을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취재를 위해 낯선 곳으로 지하철, 버스 타고 이동하는 일이 힘들었어요. 쉬면서 대중교통 이용하기 연습도 해야겠어요. 친구들이 많이 가는 부품 공장, 회사 직원을 위해 마련한 세차장은 가기 싫어요. 제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꼭 찾을 거예요!”
미정이와 지헌이는 꿈꾸고 도전하는 스무 살 청년입니다. 다만 이들은 모두 제가 근무했던 특수학교 전공과에서 만난 스무 살의 지적장애 학생입니다. 전공과는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진로 및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취업과 자립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조금 특별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지만, 이들의 고민은 스무 살 어느 평범한 청춘이 가진 고민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학생 이름 석 자 앞에는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듯이요. 하지만, 이력서에는 장애에 관해 쓰는 칸이 있어요. 지적장애, 발달장애, 자폐성 장애 이런 식으로요. 이런 장애가 있다고 하여 꿈이 다르진 않아요.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싶고,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가도,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고, 막상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같습니다. 좌충우돌 고달픈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을 깎고 또 깎이는 경험을 20대 초반에 맞닥뜨려야겠구나 싶어 마음이 찡합니다. 조금 더 경험하면서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길게 가져도 될 것 같은 생각이 제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해요. 벌써 인생이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는데 제가 일조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믿어요. 같이 세상으로 한 발짝 발을 뗐으니 이제부턴 더 넓은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는 걸요.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