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뉴스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다. <“장애 학생인데, 그걸 못 참아.".소외된 특수교사들 눈물>. 기사는 특수교육 활동 중에 일어나는 폭행과 폭언을 겪는 사례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례도 사례지만, 단박 눈에 들어왔던 것은 사진이었다. 손톱으로 꼬집고 할퀴어서 난 상처에 붙인 밴드는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고 팔뚝 한 면 전체에 그려진 퍼렇고 불그스레하다 보라색으로 된 피멍 자국. 이게 만약 부부싸움 이후에 난 멍이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모두 "이렇게 어떻게 사나요? 이혼해야지!"라고 할만한 흔적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나에게도 기사에 올릴 만한 사진이 있다는 거다. 상처가 난 부위도, 멍의 크기와 색깔도 비슷한 사진. 내가 특수교사가 된 지 20년 지났는데 그동안 변한 게 없다. 아니, 인제 와서 공론화된 게 놀랍다.
2007년 6월이었다. 현장체험학습에서 돌아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오후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더웠는지 은찬이는 교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놓고 물장난 중이었다. 얼굴도 씻고 팔도 담그더니 양말까지 벗어 빨기 시작했다. 빤 양말을 짜고 다시 물에 넣은 후 젖은 양말을 입에 물고를 반복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은찬아! 인제 그만 앉아야지!!"라고 했다. 나의 고음 목소리와 은찬이의 날카로운 눈빛이 공중에서 만나는 순간, 은찬이는 입에 물고 있던 양말을 던지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양쪽 팔을 잡고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은찬이가 흔드니 난 시들해진 콩나물 머리처럼 축 처져서 나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학생이 공포에 질려 울기 시작했고 울음소리에 달려온 다른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흥분이 최고조에 오른 은찬이를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은찬이 두 손의 악력에 몇 번을 더 팔을 내어주고, 교감 선생님까지 뛰어온 후에야 은찬이는 나를 풀어주었다. 15년도 더 지난 일인데, 건드리면 아프고 건드리지 않아도 욱신거리는 느낌은 잊을 수 없다.
멍든 팔에 연고를 바르기 위해 보건실에 앉아있었다. 망연자실. 학생한테 맞았다니, 학생 한 명을 잘 달래지 못해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것에 대한 자책감도 들었다. 혹시 뼈에 이상 있을 수도 있으니 사진도 찍어보라고 해서 정형외과도 다녀왔다. 지금은 이렇게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지만 맞았던 순간에 적어도" 특수교사인데 어쩔 수 없지 뭐. 우리 아이가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예요."라는 말은 듣지 않았기에 힘든 마음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적극적으로 학생폭력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학부모님으로부터는 사과, 동료 교사로부터는 위로를 받고 그냥 또, 일상을 보냈다. 2월이 되면 어떤 학생이 우리 반에 올까 떨려 하면서.
소리에 민감하여 급식실에서 쨍하고 부딪히는 쇳소리만 나도 급식 판을 엎어버리는 학생, "씨발##야!"하며 발로 친구와 교사를 차는 학생, 순간 빠른 속도로 머리채를 휘어잡는 학생도 교사랑 마주칠 때 ‘씩’ 웃어주는 사랑스러움과 애틋함 때문에 너무 오랜 세월 말을 못 하고 지냈다. 나도 이렇게 말로만 떠들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일목요연하게 내놓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 또, 혹시나 이런 사례들이 장애 학생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진다면 그것 또한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맞은 건 나인데 왜 관리자에게 무능한 교사처럼 보일까 봐 걱정하고, 학부모에게 폭력으로 교육활동이 어렵다는 말을 당당하게 못 했을까? 폭행과 폭언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학생이든 학부모이든지 간에. 뭔가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책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면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고민의 무게가 가벼워지리라 믿는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