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지내, 행복하진 않지만
3장. 난 그저 잠시 우울했을 뿐인데
그날의 사건 이후 한동안 학교는 시끄러웠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 영상을 지겹도록 틀어주었고,
교실에서 조금이라도 싸우는 소리가 나면 선생님들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수선한 학교 분위기와는 다르게 바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누군가 그날의 흔적을 지워버리기라도 한 걸까?
초등학생이 자살한 흔치 않은 사건이었음에도 지역신문은커녕 인터넷에 짧은 기사 한 줄조차 나오지 않았다.
당시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차디찬 사회 분위기를 엿보고 나니 그때의 어른들을, 그들의 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들의 대처는 형편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어쩌면 그들도, 학교도 누군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니까.
나름 교육열 높은 동네 학교인 만큼 어른들은 학교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아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을 깊은 땅 속에 묻어 버리는 일일지라도.
그날 이후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한동안 멍한 상태가 지속되긴 했지만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벅찰 시기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날들이 반복되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커다란 균열이 생겨 혼란과 죄책감이 뒤섞인 거센 파도가 일렁였다.
표정도, 말도 잃은 채 느리게 가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집에 돌아가서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식사를 입에 두 세 숟갈 욱여넣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그러다 어두운 방에 홀로 남으면 하얀 천장 위에서 그 아이가 나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언제부터 잘못된 건지 수백 번 고민하면서 겨우 잠에 들면 어김없이 꿈속에 나타나서는
본인이 그렇게 죽은 게 전부 내 탓이라는 말을 속삭였다.
누군가가 스스로 놓아버린 삶을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던 사람.
그러나 그 기회를 안일히 여겨 그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 넣어버린 사람.
고작 열세 살의 머리로 할 수 있는 생각은 저기까지였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나 때문이라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만약 그때 내가 빨리 알아챘더라면,
나를 피하는 너를 붙잡고 이유를 물었더라면,
내가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감정들이 얼마나 나를 갉아먹고 있는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몇 년간 나를 지독히도 괴롭힐 우울증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