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저 분이 믿는 종교가 있다면 저도 한번 믿어보고 싶네요."
그런 칭찬을 듣던 사람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일을 말없이 해치우고, 나눠서 들 짐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을 주저없이 골라 잡고, 서로 안 하려고 눈치껏 피하는 잡일과 꾸물대다 뒤집어쓸 허드렛일을 매번 처리하는 표정까지 천진난만한 그를 두고 주위에선 나름 추측을 시작했다.
'흐음, 진짜 피눈물나는 고생을 안 해봐서 저래요.' '편하게 자란 사람들이 알고 보면 의외로 착하더라고요.' '그럼그럼, 힘든 게 뭔지를 모르니까 계속 저렇게 하지, 세상 쓴맛을 봤으면 성질이 나서 저럴 수 있겠어요?' '물정을 몰라서 아직 순수하신 거지.'
순한 바른생활 훈남같은 그가 얼마전 대뜸 말했다.
"저어 베로니카님, 사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만큼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병을 앓는 그는 병원을 떠난 이후, 그런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6 개월인지, 1 년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나흘인지, 남은 시간을 모르는 '그런' 상태인 채로...
소식을 접한 이들은 의심스러워했다. '왜 아픈 티가 안 나지?' '한창 나이에 자기 신세가 억울하고 서러울 텐데 그런 티를 안 내네?' '난 잠자리 들 때마다 무서울 거 같아, 근데 왜 겁나는 티가 하나도 안 나지?' '너무 충격이라 감각이 무뎌져서 슬픈 티를 못 내는 걸까요?'
마지막 순간이 정확히 언젠지 아무도 모른다. 작년도 아니었고 올해도 아니므로 내년도 아닐 거라고 믿을 뿐이다. 지난 달도 아니었고 이 달도 아니니까 다음 달도 아니겠지, 내심 우기고 넘어갈 뿐이다. 그를 위로하기 위한 억지가 아니라 실상이 그렇다. 정말.
뜬금없게도, 살면서 두 번 경험한 지진이 떠올랐다. '아, 여기가 마지막인가보다..' 닥쳐왔던 삶의 위태로운 순간들과 내 손으로 마지막을 만들고자 했던 순간들도 함께 떠올랐다. 그런 중에도 한결같은 그의 눈빛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두려움, 후회, 분노, 슬픔. 그에게 남은 건 지금 뿐이다. 이미 세포마다 밴 아픔에 더 내놓을 시간이 없다. 고난에 더 보태줄 1 초도 없다. 그에겐 지금 밖에 없다. 지금만이 확실하다. 발 딛고 선 자리, 그곳이 모든 삶이다.
그래서 티가 안 난다. 얼마나 아프고 분하고 원통하고 서글픈지.
그래서 티를 낸다. 얼마나 귀하고 값지고 애틋하고 아름답고 기쁨이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사랑인지.
온마음 다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