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열받고 슬프고 즐거운 나날들에게
C, 네가 처음 우리집에 발을 들여놓은 날, 알아봤다
내가 널 원하게 되리라는 걸.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얘가? 방에 들어가 있어!'
너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비밀스런 어른들의 세상...
신비에 가까운 '어른 되기'에 애가 탄 나는
주의가 산만한 큰딸이 걱정인 부모에게
'집중이 너~무 잘 된다'는 이유를 대고
널 탐닉할 수 있게 되었고
[베르사유의 장미] 속 명장면들은
순전히 네 덕분에
왜곡 훼손없이 선명히, 기억 속에 저장 보존돼있다.
C, 널 떠올리면 마냥 좋다고 생각하면 오해야,
화가 날 때도 있어.
무수한 사람들이 너 없이는 못 살아서
널 파는 장소가 주유소보다 많다지만
정작 널 키우고 보살핀 농부의 생활은
여유라든가 그윽함과는 거리가 먼 정도를 넘어
아예 상관이 없구나...
게다가! 너와 이니셜은 물론 딱한 상황까지 닮은
C 있잖아, 걔를 생각해도
인상 써지긴 마찬가지야.
걔도 너 못지않은 글로벌 인기를 누리지만
가꾸고 돌봐준 농가의 실상은
로맨스나 달콤함과는 역시! 상관이 없어서
한숨날 때가 정말 많아.
C,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후회스런 기억도 있긴 하다.
두 번도 가지 않을 밀라노에서
덥고 건조하고 다리 아파서 난 짜증 때문에
신바람난 B가 같이 시켜 마시자는 에스프레소를
'No!' 야멸차게 거절했는데,
누가 알았겠니?
그게 그의 마지막 지구별 여행이 될줄...
아이처럼 작은 그의 관 앞에 아무리 진심으로 사과를 해도,
늦은 건 늦은 것일 뿐이더라고.
C, 정말이지 돌이켜보면
너만 남았다... 진심이야.
술 한 방울 못 마셔서 입에 안 대지
금연에 대성공해서 담배도 굿바이~
노는 것도 싫증나서 은둔 체질로 바뀐데다
피로 때문에 운동이랑도 별로 안 친한 요즘,
너와 함께 여는 아침은
여전히 내 곁에 있고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은
변함없이 위로와 긍정과 설렘으로 가득하니,
정말이지
너만 남았다... 진심이야 C.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