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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l 31. 2019

내 머릿속 타임머신

의지와는 무관하게 6월과 7월의 많은 시간을 실내에 갇혀 지내야 했던 관계로 계절감을 느끼지 못했다. 실내의 공기는 지속적으로 차갑게 유지되고 있었고, 비도 자주 내렸으며, 하늘은 언제나 싱그러운 파란색을 유지하고 있어서 가끔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때면, 이 계절이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가끔 문 밖을 나서면 화씨 100도를 육박하곤 하던 예년의 그 폭력적인 햇살과 더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늦봄 같은 온화한 대기가 사방에 환해서 헷갈림은 더 했다. 지난 주에는 65도를 전후한 놀라운 기온이 며칠씩이나 지속되기도 했다. 부근 어느 주에서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겠거니.... 이같은 이상 기온을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하든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하든, 일반적이지 않은 온도가 자주 반복되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내 나이가 스물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는, 그리고 스물을 넘어서도 한참까지는 마음이 늘 한 계절 앞서 살곤했다. 패션 브랜드가 한 계절을 앞서 화보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어쩐 일인지 마음은 계절을 앞질러 미리가, 설렘과 기대감을 동반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는 멀지 않은 미래를 향한 기대에 마음이 부풀고, 가끔은 먼 미래에 살고 있곤 했다. 고등학고 여름방학, 에어컨도 가동되지 않던 도서관에 앉아 겨우 회전하는 선풍기 바람에 땀을 식히며 고전문학을 해석하는 동안 몸을 휘감는 습기와 도서관의 답답한 공기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었지만, 마음은 10년 후의 어느 가을 오후를 거닐고 있었기에 그것은 그럭저럭 즐길만한 시절이었다. 간혹 마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는 십년 후로 가서 현재의 나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이것은 불안정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솔루션이었다. 심리학에 관한 책자도 흔치 않았던 나의 10대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혼자 알아낸 기가 막힌 치료법이었다. 신경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두뇌 속 타임머신 기제가 왕성하게 가지를 뻗고 세포간에 연결을 강화시키는 뉴럴 네트워킹의 강력한 프로세스가 진행중이었것의 반증이었던지도 모른다.




30년도 더 전에 내가  혼자서 알아낸, 또는 어떤 소녀들이 비밀스럽게 간직해오던 자기만의 심리치료법에 관해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공공연하게 이야기 한다. 우리의 정신이 미래와 과거로 마음먹은대로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장착하고 있는 것은 다른 생명들과 변별되는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며, 그 능력 덕분에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들은 대게가 긍정적인 낙관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미래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려있거나 우울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나 우울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세계관엔 부정적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 무턱대고 즐겁고 기분 좋을 수가 없고, 그들은 미래를 향한 근거없는 낙관성에 들뜨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세상을 더 냉철하게 지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80%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미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기대와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신경 심리학자 탈리 샤롯은 말한다. 심리학자들이 낙관성 편향 (optimism bias) 이라고 부르는 이런 인지적 편향성은 우리의 행복감에 이바지 하는 면이 크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능력에 관해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적이기 보다 이상적인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능력과 성격에 관한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예를 들어 운전실력 같은 구체적인 능력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이상이라는 대답을 한다. 약 93%의 응답자들이 그렇게 대답한다는데, 이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하다. 평균은 50% 전후를 의미하니까. 

그러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정도를 한국인들에게 물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스탠포드 대학의 마르쿠스 로즈 헤이젤 교수는 동서양인들의 이 차이점을 분명히 했다. 대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몇 퍼센트가 자신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질문했을 때, 유럽계 미국인 스탠포드대 학생들은 “30% 정도”라고 대답해 나머지 70% 보다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반면, 교토대 학생들은 “50%정도”라고 말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 바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물었을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80년대의 그런 열악한 교실에서도 미래로 향한 타임머신이라는 출구는 나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이 우울증이나 정신과적 문제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막아주는 기제였고, 에어컨 없는 섭씨 35도를 육박하던 도서관이라는 현재에 갖혀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퓌시킨이 일찌기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그러나 나이가 숫자를 더해가면 미래를 향한 타임머신은 속도가 느려지고 과거 여행을 더 하고 싶어한다. 슬프지 않다.  



오늘 아침 barre 클래스를 이끌던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크리스틴은 키가 크고 날렵한 몸매를 가졌으나 어딘지 좀 블랙스완같은 느낌이 있었다. 다른 강사들이 한없이 부드럽고 친절하다면, 그녀는 친절하지만 어딘지 단호하고 매서운 기운을 발산하는 스포츠우먼의 기운이 느껴졌다. 클래스는 보통 한 시간이지만, 오늘은 45분으로 단축 수업을 하는 대신 무서운 강도로 일관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서 바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동작을 완성하고 반복하는 동안 그녀는 날렵한 몸으로 스튜디오를 막 날아다녔다. 이 강도로 한 시간을 꽉 채워 수업을 했더라면 나는 걷지 못하고 스튜디오를 기어서 나올 뻔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녀가 지내온 그간의 상황을 살펴보니 그리 늘씬하고 영화배우처럼 예쁜 여자는 사실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32주 만삭이었을 때도 요가의 모든 동작과 물구나무 서기를 하면서 never underestimate yourself! 라는 자축의 메세기를 남기곤 하던 사람.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아기를 배 위에 올려놓고, 등 위에 들쳐 업고, 놀이처럼 요가를 해 온 사람이고 보면, 그녀가 하는 운동은 몸의 수련을 넘어서 극기라는 정신의 수련단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음... 첫인상에서 느껴지던 예감이 맞았다.

나는 나를 underestimate 하고 있는가? 물구나무서기를........ 지금 시도?...... 그래야하나?

몸이 타는 것 같이 뜨겁던 크리스틴의 barre시간에는 빨리 수영장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침내.... 깨끗하고 한적한 수영장은 언제나 최적이다. 7월을 마감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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