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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박스 Oct 22. 2023

Toes To Bar 딱 한 번, SNS 무한 번

시도 때도 없이 근육통과 부상에 시달리길 1년쯤 하고 나니 점차 통증을 겪는 시간이 단축되고 다치는 빈도도 줄었다. 웬만한 근육통은 하루가 지나면 괜찮아졌다. 근육통이 최대 72시간까지 간다는데, 내 육체가 보내는 신호로 봐서는 72시간의 정점을 찍은 뒤 점차 24시간을 향해 회복 속도를 좁히며 근력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육체가 중강도 근력 훈련을 잘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전진했고, 그만큼 눈에 보이는 변화도 생겼다.


1년간 크로스핏을 해서 얻은 성과는 ‘토투바(Toes to Bar)’ 1회 성공이었다. ‘토투바’란 철봉에 매달린 채로 다리를 들어 올려 발가락(toes) 끝이 봉(bar)에 닿게 하는 동작이다. 토투바 1회 하는데 1년이나 걸렸냐는 질문이 돌아올지 모르겠다. 그렇다. 연속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 들어 올리는데 말이다. 나의 복근이 내 다리를 180도 끌어올리는 힘을 기르는데 365일이 걸렸다. 연속 2회 성공하려면 보다 더 단련된 복근이 필요해 보인다.


1년 반이 지나 거둔 수확이라면 밴드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맨몸으로 ‘키핑 풀업(Kipping Pull-Up)’을 해낸 것이었다. 키핑 풀업과 풀업이 살짝 다른데, 먼저 ‘풀업(Pull-Up)’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턱걸이로, 철봉에 매달려서 반동 없이 수직으로 몸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얼굴이 봉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상체를 강화시키는 운동이다. ‘키핑 풀업(Kipping Pull-Up)’은 크로스핏에서 주로 하는 ‘반동 턱걸이’로, 반동을 최대한 많이 줘서 올라간다는 게 일반 풀업과 다른 점이다. 반동 없이 올라가는 것보다 다소 수월하게 많은 개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운동력 향상에 초점 맞춘 동작이라 할 수 있다. 키핑 풀업 1회 성공 후로는 한 달 새에 5회까지 개수를 끌어올렸다. 매일 연습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개수가 는 까닭은 아무래도 한번 성공한 뒤로 감을 잡았고, 그다음으로 복합적인 훈련이 가져다준 근력 덕택일 것이다.


2021년 12월부터 박스에 나갔다. 묘하게 매료된 마음으로 박스에 다닌 지 햇수로 3년 차, 기간으로 1년 10개월이 됐다. 육아를 위해 쉰 기간을 빼면 1년 7개월 차 크로스피터다. 여전히 크린이고, 언제 크린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한 1인이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꽤 많은 변화가 찾아왔는데, 우선 예전보다 덜 피곤하다, 나만 아는 희미한 초콜릿 테두리 복근이 생겼다, 나와 부딪힌 남편이 살짝 튕겨나가 그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을 여전히 들어 안을 수 있고, 아이와 몸으로 놀아줄 수 있다, 정도다. ‘정도’라고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정도나 된다’가 더 맞는 표현이다. 바만 달랑 들고 역도를 시작한 내가 지름 45CM 크기의 원판다운 원판을 낀 바벨을 들어 올릴 힘을 갖게 됐다. 철봉에 매달려서 오르락내리락할 만큼 팔과 등에 근력도 생겼다. 남편에게 이두근을 자랑했더니 그냥 팔 둘레만 굵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알통이 보인다.


밧줄 타고 오르기에 성공한 적도 있다. 우리 박스의 층고는 일반 가정집의 2배 정도 돼 보인다. 5M쯤 될 거다. 밧줄 타기는 힘도 힘이지만 기술적인 요령이 필요하다. 감을 잘 잡으면 한번 정도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토투바나 풀업만큼 오랜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 내 경우에는 크로스핏 7, 8개월 차일 때 처음 해보고 성공했다. 나 스스로 당연히 못 오를 거라 생각했는데 발 매듭이 예상과 달리 착착 잘 감겼다. 밧줄의 중반부에 이른 나는 성공을 직감했는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진 찍어주세요!!!”

박스에서 도통 말이 없던 아줌마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당황한 코치님이 본인의 핸드폰을 가지러 저만치 달려갔다 오셔서 내가 천장을 터치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줬다. 문자로 전달받은 영상이 손톱만 했다. 발신 에러가 나지 않게 하려고 용량을 줄여 보낸 것으로 짐작됐다. 시력이 나빠질 것 같은 화질이었다. 오래간만에 낸 퍼포먼스에 스크래치가 났다. 하늘이 장난기를 발휘해서 돕지 않는 날도 있게 마련이다. ‘하아, 이런....’ 그래도 카카오톡 프로필에 굳이 올리고 싶었다. 아마추어의 심정이다. 프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감춰도 저절로 드러나니까. 다음에 또 밧줄 타기에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었고, 실제로도 그 뒤로 성공한 적이 없다. 프로필을 본 베프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기, 2G 애니콜로 찍었어?’

 

밧줄 영상을 기점으로 내가 직접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코치님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다(정말입니다, 코치님). 그전까지는 영상을 찍는 게 쑥스러웠다. 초보가 영상만 열심히 찍으면 웃겨 보일 것 같았다. ‘실력이 조금 늘면 찍어야지.’ 소심하게 부끄러움을 탔다. 그런데 밧줄 타기를 할 때 이미 인증 사진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겠다, 더 이상 안 찍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나만 나를 신경 쓸 뿐 내가 영상을 찍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진짜 찍을 때가 된 것이다. 밧줄 해프닝 이후로 아주 가끔 근력 훈련 장면이나 와드의 초반부를 촬영했고, 초반 이후로는 힘이 달려서 제대로 동작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찍지 않았다. 결국 보여주기 용 혹은 내 머릿속에 잘했다고 세뇌시키기 위한 용도의 영상과 다름없었다. 특정 동작을 딱 한 번 성공한 것도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알아서 자동 재생됐다. 마치 내가 여러 개를 거뜬히 해낸 것 같은 아우라를 내뿜었다. 무한 반복되는 화면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런 재미에 운동하는 거지 뭐.’ 그동안의 오운완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여러 영상을 한꺼번에 올렸다. 다시 보고 좋아하고, 또 보고 만족해했다. 한 번의 성공도 거저 된 건 아니니까. 몸짱 소방관들이 바디프로필로 달력을 만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력을 인증해 두는 건 또 다른 노력을 향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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