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이야기 음악 : Mark Ronson - Uptown Funk
하노이 문묘를 방문하고, 우리는 호스텔로 돌아왔다. 더운 날씨 때문에 기력이 다한 채로 (약간 축축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정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바로 저녁밥이었다. 그러나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그래서 잠시 호스텔에서 휴식을 취하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으로 일정이 결정됐다.
그 사이 비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친구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지만 나는 생각보다 꽤 심하게 낯을 가리는 데다, 영어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 때문에 아직까지 조세핀, 밍키와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야기가 시작된 이후부터 대부분의 주제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한 것들이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런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던 이유는 두 친구의 배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호스텔 로비의 초록색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나눴던 대화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았다.
(예전에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한국의 동성동본 혼인
한국어 발음 개그(ex. 1004, 4랑sun 등)
다양한 나이의 종류 및 중요성(ex. 빠른 년생과 만 나이, 성인의 기준)
본관 문화
사진 문화(ex. 한국식 하트, 브이, 얼굴 가리기 등)
양력 생일과 음력 생일
그야말로 Korean 바이브… 가 느껴지는 이 주제들을 친구들은 예상외로 무척 흥미로워했다. 물론 나를 위해 더 눈빛을 반짝거리며 들어줬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애초에 다들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친구들이기도 했다. 나 역시 사회 문제와 역사에 관해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걸 좋아하기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친구들이 특히 관심을 보였던 주제는 ‘나이’였다. 2002년생인 내가 한국에서 17살이 아닌 18살이라는 사실을 신기해하던 친구들은 그 이후에 여행 기간 동안 누군가에게 나이를 소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가끔 “2002년에 태어났대! 진짜 어리지? 근데 한국에서는 18살이래! 진짜 신기하지?”를 덧붙이고는 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성인’의 기준이었다. 여행 고정 멤버는 나까지 4명. 즉 나를 제외한 아글라이, 밍키, 조세핀 이 세 명은 모두 독일인이었고 두세 살 차이이긴 하지만 나이 역시 성인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대한민국에서 ‘성인’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떠올려보자. 20세(혹은 만 19세) 청년이란 무엇인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고 보호자 동의서 없이도 숙박업소 예약이 가능하며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에 대한 온전한 ‘책임’이 생기는, 왠지 나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시기에 다다른 존재가 아닌가! 무엇보다… 합법이 되는 나이인 것이다. 뭐가? 음주와 흡연이. 바꿔 말하면 그건 이런 얘기다. 미성년자인 나에게는 아직 전부 불법이라는 것.
다행히도 나는 그런 것(a.k.a 술과 담배)에는 미생물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담배는 지나가다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팠고, 술 같은 경우 가족 모임 같은 곳에서 어른들이 조금씩 주실 때만 몇 번 마셔봤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마신 후에 내가 하는 말은 똑같았다. “아니 이게 맛있어요?”
아마 여기까지 읽은 분들 중 몇몇은 위에서 스쳐지나 온 한 가지 문장을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이 세 명은 모두 독일인이었고.>
그렇지만 독일인들이 전부 다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내 친구들 역시 애주가는 아니었고 술에 흥미가 큰 편도 아니었다. 물론 술에 익숙하긴 했다. 메뉴에 술이 있는 곳에 가면 어떨 때는(저녁 한정으로) 맥주나 칵테일을 시켰다. 덕분에 아주 기본적인 독일어(그래 봤자 ‘안녕하세요’와 ‘사랑해 ‘.)를 제외하고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독일어 단어는 ’건배‘였다.
그런데 사실 ‘낯선’ 사람보다 ‘익숙한’ 사람은 한 수 위고, 가끔은 그 ‘한 수 위’의 태도가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나 역시 여행 초반에는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신나게 리듬을 타는 흥 많은 사람들로 꽉 들어찬 번쩍번쩍한 공간들이 어색한 걸 넘어 일종의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충격의 태곳적 분화구가 어디였냐면… 바로 여행 3일 차, 5월 8일 밤의 하노이 올드쿼터였다.
시작은 이랬다. 호스텔 로비에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오늘의 저녁도 역시 쌀국수였으나, 확실히 어제와 또 다른 가게에서 먹는 쌀국수의 맛은 은근히 차이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틈만 나면 쌀국수를 먹고 싶어 하던 자타공인 프로 쌀국수러인 나에게 쌀국수의 본고장은 완벽한 여행지였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으뜸은 식욕 아니던가! 쌉싸래한 고수가 듬뿍 들어간(나는 고수 마니아다.) 정통 쌀국수를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는 것. 일단 그것만으로도 베트남이 너무 좋았다.
그러던 중 저녁을 다 먹어가는 우리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밍키와 조세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은 새로운 독일인 친구들 마우와 신티였다. 나는 당연히 두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이었고, 아글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친화력 좋은 두 친구 덕분에 텐션이 높아진 우리는 일단 거리로 나갔다. 약속이나 한 듯 어디론가 향하는 친구들의 뒤를 따르는데, 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거리가 좁아지며 사람이 많아지더니, 화려한 조명에 호응하듯 다닥다닥 늘어선 가게마다 온갖 힙합과 락과 댄스 음악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영문을 몰라 친구들에게 물으려고 해도 길 전체가 워낙 시끌벅적해서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용케 정신을 차린 내 마음속의 ‘이성’이 상황을 대입해 산출해낸 결과를 내게 외쳤다. 이거 그거구나. 노래 가사 속에서나 듣던 Party tonight.
얼마 후 친구들과 수십 개의 펍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실내에 흐르는 빨강 초록 불빛들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길거리에 있던 다른 펍들에 비해 크기는 작았지만 손님들은 많았다. 구석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우리가 직원에게서 메뉴판을 건네받자마자 박자가 빠른 댄스 음악이 나왔다. 그러자 친구들은 앉은 채로 리듬을 타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달랐다. 물론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뜻이 아닐뿐더러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서너 번 다시 우린 된장찌개처럼 잔뜩 쫄아 있었다. 난생처음 혼자 해외로 배낭여행을 와 아직은 낯선 것을 넘어 두려운 이국에서 혹여나 여권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24시간 내내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심지어는 사람 많기로 유명한 하노이 올드쿼터의 펍에 들어오다니… 동방예의지국에서 나고 자라 방바닥에 앉아 양반다리 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텅 빈 영화관에서 스크린 보는 게 불편해도 절대 자리를 옮기지 않는 열여덟 살 유교걸에게 이 상황은 너무나도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뭐 마실래?”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데 친구들이 물었다. 칵테일을 시킬 거라는 친구들에게 나는 스프라이트를 마시겠다고 얘기했다. 주문을 마치고 즐겁게 웃고 떠드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직 이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메고 다니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 마른침만 삼키는데 음료가 나왔다. 칵테일 다섯 잔에 얼음잔이 딸려 나오는 탄산음료 세트. 왠지 얼떨떨한 기분으로 잔을 들어 건배했다. 평소라면 흥겨웠을 음악이 오늘따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공포 영화 속 BGM처럼 들렸다.
꽁꽁 얼어있는 나를 눈치챘는지 내 앞에 앉아있던 아글라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응. 근데 이런 곳에 처음 와봐서 조금 무서워.” “걱정하지 마. 여러 명이서 같이 있잖아. 조금만 있다가 다시 호스텔로 갈 거야.” 든든한 아글라이의 이야기에 걱정이 조금 덜어졌다. 어느새 잔이 빈 친구들은 칵테일을 한 잔씩 더 시키기도 했다. 나는 스프라이트만 열심히 홀짝댔다. 그리고 오늘도 되새겼다. 호랑이 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근데 여기는 호랑이 굴도 아니다. 이 문장을 말이다.
한편 나보다 더 걱정 중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실시간으로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친구들이었다. 전용 유심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휴대폰 데이터가 많아진 나는 인터넷 연결이 잘 되는 지역에서는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했는데, 그 순간 나와 연락 중이던 친구들은 상황(대충 ‘살면서 처음 가본 타국에서 살면서 처음 펍에 가서 몰아치는 비트와 휘황찬란한 클럽 조명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다…’는 이야기)을 듣고 마치 거대한 자연재해에 맞서는 듯 연신 <정신 차려>와 <괜찮아??????>라는 문자만 번갈아 가며 보냈다. 서프 버디였고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간 제이슨 삼촌은 나의 소식을 SNS에서 듣고 “무슨 일 있어? 삼촌이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줄게”라며 걱정스럽게 연락했다.(진심으로 걱정해주시니 별 일 아닌 걸로 호들갑 떤 것 같아 도리어 죄송해졌었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일인지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삼촌,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쨌든 이 분위기에 그나마 아주 조금 익숙해질 즈음, 친구들은 펍 안에 있는 노트북 앞으로 다가갔다. 이 펍은 스피커와 연결된 노트북으로 손님이 직접 음악을 틀 수 있는 곳이어서, 친구들도 원하는 노래를 직접 골라서 재생했다. 친구들이 튼 독일 노래 몇 곡과 다른 손님들의 노래들이 연달아 이어지자 펍 전체의 흥이 최대치로 올랐다. 그리고 홀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공간에서 즉흥적인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어리둥절해서 친구들 손에 이끌려 나가니 춤을 추던 스페인 남자 손님이 내 손을 잡고 박자를 맞춰 몸을 움직였다. 우물쭈물해하던 나도 그 손님을 따라 잠깐이나마 그 시간을 서투르게 즐길 수 있었다. 친구들이 튼 <Gummy Bear> 리믹스를 마지막으로 듣고 우리는 펍 밖으로 나왔고, 나는 앞장서는 친구들을 따라 온갖 귀중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철통보안하며 올드쿼터를 벗어났다.
올드쿼터 바깥의 하노이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달리던 낮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다.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다. 게다가 하루 동안 흘린 땀들로 인해 온몸이 찜찜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땀 말고도 찜찜함을 극대화시키는 이유가 더 있었는데, 바로 월경이었다. 하노이에서 묵었던 호스텔은 큰 가방을 멘 위 층인 7층(체크인 전 내가 정신 놓고 뻗어있던 그곳)에 보관하는 구조였다. 물론 도미토리에 놔둬도 상관없지만, 여행 초보인 나는 그곳에 짐을 두는 게 더 편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월경이 시작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필요한 여성용품들은 전부 7층에 놔둔 내 배낭 안에 있었고, 문제는 7층은 저녁 10시면 도난 방지를 위해 호스텔 측에서 폐쇄한다는 점이었다.
마우, 신티와 중간 지점에서 헤어지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새벽 2시였다. 인간 내비게이션 수준의 어마어마한 공간지각 능력을 자랑하는 아글라이 덕분에 깜깜한 하노이를 헤쳐 호스텔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사용하는 층이 다르기에 로비에서 일단 헤어졌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당직 근무로 로비에 앉아있던 호스텔 스태프에게 혹시 7층 문을 잠깐 열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상황을 들은 스태프는 알겠다며 로비 의자에 앉아 쪽잠을 청하던 또 다른 스태프를 깨웠다. 그 스태프는 나이가 좀 드신 아저씨 분이었는데,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한 게 마음에 걸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베트남어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저씨께서는 괜찮다며 웃으시고는 7층에 도착하자 열쇠로 잠긴 문을 열어주셨다. 나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내 가방 속을 마구 뒤졌다. 괜히 수고스러운 일을 만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제대로 열리지도 않은 지퍼 틈으로 손을 욱여넣어 꺼낸 여성용품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얼른 가방을 짐 보관대에 올려놓은 후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고 아저씨께서 다시 문을 잠그셨고,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도미토리가 있는 4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문을 열려는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도미토리 열쇠를 7층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울고 싶었다. 이렇게 덜렁대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도저히 다시 내려가서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까의 피곤해 보이던 아저씨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해서 해 뜰 때까지 바깥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전부 반성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아까 나에게 굿나잇을 말해주던 호스텔 스태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괜찮다면 7층 문을 한 번 더 열어줄 수 있냐고 얘기했다. 정말 대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호스텔 스태프가 “아침에 7층으로 올라가서 열쇠를 찾아오는 게 어때요? 지금은 내가 문을 열어줄게요.”하고 대답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Cảm ơn(감사합니다)!"
문을 열어주며 “Good night.”하고 말하는 스태프의 친절한 목소리와 함께 도미토리 문이 닫히고, 나는 살금살금 침대로 들어갔다. 한숨 돌리고 나서야 긴장감에 땀을 뻘뻘 흘려 옷이 축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시계를 보니 벌써 세시가 넘는 시각이었다. 시간으로만 보면 벌써 하노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 접어든 상태였다.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뭐가 되었든 일단 첫 일정은 샤워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나는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에 끝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고생한 나와, 나 때문에 고생한 분들 모두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호스텔 스태프 분들에게 들리지 않는 감사 인사를 건네며, 나는 그 직후 기절하듯 잠들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