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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Aug 15. 2019

'처음'에 낭만이란 없다

1-02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190507 ~ 190510 : 베트남 하노이 #1 (Hanoi, Vietnam)




DAY 1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 공항에 도착한 건 5월 7일 새벽 3시 즈음이었다. 비좁은 비행기에서 곯아 떨어졌더니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에어컨 바람에 못 이겨 입고 있던 바람막이는 비행기를 벗어나자마자 허리에 둘렀다. 극악의 습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미성년자 단독 입국 금지'는 며칠 안 되는 짧은 여행 준비 기간 내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던 가장 큰 원천이었다. 어떻게든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애썼지만 확신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심지어 외교부 영사 콜센터조차 "원칙적으로는 금지가 맞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 특성 상 현지 상황에 따라 규정이 달라져서, 대사관에 직접 연락을 해봐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확인 차 대사관에 전화한 것만 스무 번 가까이 됐다. 물론 대사관이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메일에도 답장이 없어 멘탈은 몇 배 더 불안해졌지만.(만약 이게 대사관에 대한 분노의 표시 같다면, 정답이다.) 어쨌든 무사히 도착 비자를 발급 받아 출국장 밖으로 나가야 고온다습에 괴로워 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당황 속에 휩싸여 한국으로 강제 귀국하기는 싫었다. 고된 몸보다 좌절 속에 무너질 마음이 더 끔찍했다.


우선 도착 비자를 발급해주는 곳으로 갔다. 피곤한 얼굴로 여권과 지참 서류를 받아드는 직원들 뒤로 사무실 벽에 걸린 호치민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액자 속 호치민은 담대하면서도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국에는 저렇게 사진으로 걸어놓을 정도로 영광의 인물처럼 여겨지는 국가 지도자가 있던가? 아무리 되새겨도 세종대왕 외에는 떠오르지 않아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긴장 속에 조용히 서있는데 비자 발급 데스크 위의 스크린에 내 이름과 사진이 떴다. 재빨리 데스크 앞으로 다가가자 직원이 여권을 건네줬다. 여권 안에는 30일짜리 관광 비자가 부착되어 있었다. 무사히 발급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가 됐다. 만약 단독 입국이 불가능하다면 비자 발급도 당연히 안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가져온 공증과 여권을 품에 꼭 쥐고 출국심사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새벽 입국이라 사람이 적어 바로 심사를 받았다. 여권을 펼쳐본 직원은 너무나도 쉽게 나를 통과시켰다. 걱정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수하물을 챙겨 출국장 밖으로 나왔다. 어… 그러니까, 그게 다였다. 잔뜩 겁을 먹고 왔건만 모든 게 놀라울 정도로 수월하게 끝났다. 공증 발급 비용이 아깝긴 했지만(…) 문제가 생긴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출국장 옆의 파파이스가 베트남어로 써있는 걸 보고 나서야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베트남에 도착한 것이다! 정말 아무나 붙잡고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또 다른 문제점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단 공항 픽업 서비스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출국 당일 날 공항에서 신청한지라 정확히 마무리 지어지지 못한 상태였고, 만약 확실히 신청이 됐다고 하더라도 오전 8시에 픽업이었다. 근데 아직 새벽 4시도 되지 않았다니. 우선 현금을 인출할 생각으로 ATM으로 걸어가자 택시 기사가 빛의 속도로 달려와 호객 행위를 했다. 카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연신 "No Thanks"를 외치며 공항에 놓인 의자에 앉았지만, 그 기사가 포기하고 돌아가니 다른 기사가 다가왔다. 한 명이 가면 저쪽에서 또 오고. 꾸준히 영업을 시도하는 택시 기사들은 귀찮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공항이 버스 터미널만큼 작아서 어딘가에 피해 있기도 어려웠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혹여라도 도난이나 해코지를 당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모기가 너무 많아서 더워도 담요를 덮고 있었다.

그 덕분에 밀려오는 피로 속에서도 당연히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나와 내 짐이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묘하게 불쾌한 향이 섞인 습한 공기와(아직도 그 냄새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냄새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모기들까지….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그런 나를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게 도왔던 건 맞은편에 앉아있던 필리핀인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마자 한참이나 한국 드라마 얘기를 쏟아냈다. 박신혜, 이민호, 송중기, 김수현, 전지현, 그 외 많고 많은 한국 배우들과 그들이 출연한 드라마들. 나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잘 아는 호쾌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나를 졸음에서 구원했다. 싸고 맛있는 필리핀 망고와 본인 동네에 쏟아진 장마, 베트남에서 보낸 여름 휴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날이 많이 더우니 건강을 조심하라던 그녀는 공항 끄트머리에 있는 카페가 문을 연 것을 보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여전히 졸리고 힘겨웠지만 다행히 날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노숙한지 어느덧 5시간. 의자에 누워 자는 사람들을 무서운 얼굴로 깨우는 공항 경찰을 구경하다보니 오전 8시였다. 나는 내 몸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배낭을 짊어지고 (한참을 헤매다) 픽업 기사와의 약속 장소로 갔다. 그리고 약속 장소를 찾아서 어드벤쳐 영화를 찍는 동안 노이바이 국제 공항이 굉장히 넓은 공항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각종 호객 행위에 어찌할 줄 몰라 괴로워 했는데 이 공항은 무려 3층까지 있었다. 당연히 그 두 개 층은 깨끗하고 컸다. 아니, 하노이처럼 아시아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의 공항이 버스 터미널 수준으로 작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 시간에 픽업 기사를 만났다는 게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호스텔로 가는 차 안에서 잠깐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베트남 하노이 도착'의 일정이 아직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고통스러운 수준의 피로였음에도 창 밖으로 바라본 하노이의 풍경이 낯설고도 신비로워 겨우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회색빛 먹구름이 일렁이는 타국의 하늘이, 제대로 된 신호등 하나 없는 도로 위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들의 행렬이, 원색의 간판을 단 오래된 낮은 건물들이, 세월의 흐름 때문에 내려앉은 아스팔트 바닥들이. 이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전부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중이었다. 첫 유심을 끼운 휴대폰 상단에 한국보다 2시간 느린 현재 시각이 떠있었다.


40분 가까이 달려 호스텔에 도착했다. 조식을 먹던 호스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꼭대기인 7층에 배낭을 가져다 놓았다. 체크인 시간이 2시부터였기 때문에 아직도 5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도미토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눈이 감기는데 그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됐다. 나는 호스텔 스태프에게 7층에서 쉬어도 되냐고 물었다. 스태프는 그렇게 하라며 체크인 시간에 내려오면 된다고 대답했다.


7층으로 가는데 몸이 계속 휘청였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곤함이 더 크게 와닿았다. 공용공간인 7층의 루프탑 정원으로 나가 구석에 놓인 베개를 베고 누웠다.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자동취침모드에 돌입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눈을 힘껏 뜨며 휴대폰을 들었다. 우선 아글라이에게 도착했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출국 첫 날, 이국의 공항에서 새벽을 보낸 나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한 부모님에게도 연락을 드렸다.


가족들에게 보낸 사진.

인증사진을 보내자 빛의 속도로 답장이 왔다. 고생 많았다는 메세지를 읽자마자 답장도 하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려도 차라리 맞으면서 자는 편을 택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까지는 이렇게 (죽을 만큼) 피곤했던 적이 없었다.


춥다가 덥다가 춥다가 덥다가. 자도 자는 게 아니었다. 평생 기다려야 할 것 같던 2시가 된 걸 확인하고 곧장 체크인을 끝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샤워였다.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이던 몸을 깔끔하게 씻어냈다. 압박감에 짓눌렸던 마음도 같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와보니 아글라이에게서 메세지가 와있었다. "어디야? 난 지금 1층에 있어." 문자를 읽고 얼른 1층으로 내려가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아글라이였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포옹하고 나서야 불안감이 눈녹듯 사라졌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두 친구와 조식을 먹으며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시내에 다녀오겠다는 아글라이에게 오늘은 좀 쉬겠다고 말하고 도미토리로 올라왔다. 침대 한 칸이 전부였지만 안전하게 잘 도착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영화 주인공처럼 캐리어를 끌고 나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하늘을 보는 낭만적인 시작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반짝이는 청춘 시절에 이토록 짜릿하고 매력적인 개고생이라니! 사실 그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뻗어버렸다. 늘 불면증에 시달리던 내가 오랜만에 뒤척임 한 번 없는 깊은 잠에 빠진 날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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