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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Aug 25. 2019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2,800km

1-03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190507 ~ 190510 : 베트남 하노이 #2 (Hanoi, Vietnam)




DAY 2


다른 침대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벌써 아침 6시였다. 전날 오후부터 하루 종일 잠만 잔 덕분인지 많이 피로하진 않았다. 축축한 공기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샤워를 하고 나오니 견딜 만했다.


1층에는 이미 조식을 먹고 있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아침에 도착할 나머지 두 친구와 함께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하노이 워킹투어에 참여하는 게 우리의 첫 일정이었는데, 아글라이의 얘기에 따르면 워킹투어는 오전 10시부터였다. 그렇다면 아글라이는 지금 공항에 두 친구를 마중 나갔을 것이다.


하노이 첫 조식.

일단은 조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요거트가 곁들여진 신선한 생과일'을 주문했다. 특별한 건 없어도 비몽사몽 한 아침의 에너지를 완화시켜주기에는 딱이었다. 같이 마신 차도 따뜻해서 좋았다.


테이블에서 쉬던 도중 아글라이에게 문자가 왔다. 호스텔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였다. 2층에서 먹었더니 친구들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빈 그릇을 들고 로비로 내려갔다. 아침 인사를 하는 아글라이 옆에 새로운 얼굴들이 있었다. 앞으로 함께하게 될 Minki(밍키)와 Josephine(조세핀)이었다. 인사 차 포옹을 나누는데 어색함이 묻어났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친구들과 얼마나 친해질지 몰랐다.


어쨌든 드디어 다 모인 우리 넷의 관계는 독특했다. 아글라이와 밍키는 레바논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친해졌고, 조세핀은 밍키가 다닌 기숙학교의 동기였다. 즉 조세핀과 아글라이는 베트남에서 처음 만난 것이다. 나 역시 밍키와 조세핀을 그 날 처음 만났으니, 어찌 보면 우리 넷 다 서로에 대해 완벽히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앞으로 이 여행기에 등장할 나머지 친구들과의 관계도 전부 특이하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몰랐던 친구들과 타국에서 처음 만나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가장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물론 배낭여행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라지만, 내내 동행할 고정 멤버들까지 완전히 초면이라는 건 평소에 걱정을 태산만큼 달고 사는 나에게 어마어마한 고민거리였다. 게다가 나는 낯가림도 심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세 친구와 로비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뒤덮었다. 파묻힐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한국으로 돌아갈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정말 소중한 기회였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어! (무엇보다 이건 호랑이굴도 아니다.)


워킹투어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도미토리로 가 옷을 갈아입은 후 간단한 짐만 챙겨 로비로 내려왔다. 워킹투어에 참여하는 다른 여행자들과 인사도 나눴다. 호스텔에서 워킹투어를 담당하고 있는 조니가 가이드로 우리와 동행할 예정이었다. 하노이 로컬인 조니는 밝고 에너지가 넘쳐 투어 시작부터 여러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오늘의 일정과 함께 몇 가지 주의사항도 말해주었다. 빵이나 과일 등을 파는 사람들 혹은 택시 기사들처럼 호객 행위를 시도하려는 이들과는 웬만하면 눈을 마주치지 말 것, 항상 소지품 도난을 조심할 것, 오토바이가 달려와도 망설이지 말고 도로를 건널 것. 이때 조니가 얘기해준 이 주의사항들은 베트남을 여행하는 내내 활용할 수 있는 팁이었다.


워킹투어를 하며 카메라에 담은 하노이의 풍경.

우리는 조니를 따라 하노이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베트남의 생생한 모습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매연을 내뿜으며 거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이나 볼륨이 100인 스피커처럼 우렁찬 하노이 사람들의 대화는 신비롭거나 매혹적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나뒹구는 건 덤이었다. 같이 걷던 조세핀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소음 때문에 목소리를 듣지 못해 서로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워킹투어 중 발견한 박항서 감독의 입간판. 지금도 있을까?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무엇보다 내게는 전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딱 한 가지 종류의 물건만 판매하는 가게들과 시내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작은 사원들이 대한민국에는 없지 않은가. 이게 바로 베트남인 거야!


가이드인 조니와 나눈 이야기의 주제들도 재밌고 신기했다. 조니는 나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잘 알았고(근데 공항에서 만난 필리핀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내가 너무 모르는 건가?) 케이팝 팬이었다. 심지어는 한글로 된 노래 가사들과 포인트 안무까지 전부 다 외우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 옆으로 와 "이 노래 알아? 내가 엄청 좋아하는 노래야." 하며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조니 덕분에 매 순간 케이컬처의 입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조니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용실에 붙어있는 아이돌들의 화보, 박항서 감독이 모델인 광고, 다양한 한국산 과자들…. 정말 알다가도 모를 한국이구나, 싶었다.


왼쪽 위부터 차례대로 성요셉 성당, 호안끼엠 호, 호안끼엠 호 옆의 나무 밑.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만들어진 성요셉 성당(Nhà Thờ Lớn Hà Nội)과 하노이의 중심인 호안끼엠 호(Hồ Hoàn Kiếm) 등 하노이의 랜드마크를 둘러보고, 우리는 가이드인 조니의 안내로 간 식당과 카페에서 분짜와 코코넛 커피를 먹었다. 평소에 코코넛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코코넛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반면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게 분짜였다. 맛은… 이하 생략.(그 가게의 분짜가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분짜 자체가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식당에서 먹든 반응이 똑같았고, 최대한 분짜는 먹지 않았다.)


하노이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워킹투어는 오후가 되어 끝났지만, 호스텔 앞에 도착했어도 나는 도미토리로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중요한 미션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든 베트남 화폐인 동(VND)을 손에 넣는 것. 내가 가진 돈은 100달러짜리 밖에 없었기 때문에, 환전소를 찾아 환전을 하거나 ATM에서 돈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베트남 다음으로 여행할 국가인 캄보디아는 ATM 사용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ATM에서 돈을 인출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준비성이 철저한 나답게(…), 미리 한국에서 수수료가 가장 낮은 체크카드를 발급해온 상태였다.


유일하게 아는 한국어가 X됐다…(한국인 친구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고 했다.)라던 멕시코 친구 베르나르도 역시 ATM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나는 베르나르도와 함께 ATM으로 향했다. 호스텔이 있는 길을 쭉 걸어 코너를 도니 ATM이 여러 개 있었다. 이제 진짜 실전이다.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English 버튼을 누르고,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침착하게 기계를 조작했다. 한국에서도 ATM 써본 적 없는데 베트남에서 첫 도전을 하게 되다니. 그리고 생각보다 문제없이 현금 인출!


…이었으면 좋았겠지만, ATM에 뜨는 메시지에는 내 카드를 인식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옆의 ATM, 그 옆의 옆의 ATM, 그 옆의 옆의 옆의 ATM까지 전부 그랬다. 어째 불길하다 싶었는데 베르나르도가 아는 유일한 한국어 문장이 내 상황에 아주 딱 맞았다.


일단은 베르나르도에게 먼저 호스텔에 가있으라고 얘기한 후, 다른 ATM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길 끄트머리에 ATM이 하나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다급히 뛰어가 ATM의 버튼을 눌렀다. 주변에 서있던 베트남 사람들이 나를 빤히 쳐다봤지만 일단 돈을 뽑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생각할 수 있도록 돈아 제발 인출되어줘…. 입술을 물어뜯으며 간절히 기도한 덕분인지 가까스로 카드를 인식한 ATM이 돈을 내뱉었다. 무릎을 꿇고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돈을 가방 깊숙이 소중하게 집어넣고 호스텔로 달려갔다. 여행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때가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세 친구와 호스텔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 몇 명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쌀국수였다. 아글라이가 찾은 가게였는데, 도착하니 현지인들이 줄을 서있었다. 그 줄에 서있다가 순서가 되면 메뉴를 말하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소고기 쌀국수를 주문하고 자리로 향했다.(소고기 쌀국수를 뜻하는 'Phở Bò'는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베트남 단어 중 하나다. 물론 소소한 단어지만.)

감동의 쌀국수. 가게 이름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의 언어로 이루어진 대화를 듣고 있으니 음식이 나왔다. 비주얼은 평범한 쌀국수였다. 그러나 입안에 넣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국에서 파는 쌀국수보다 향신료 맛이 강해 적응하기 힘들 줄 알았지만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게다가 양도 엄청 많았다. 역시 유명한 건 이유가 있구나. 고수도 듬뿍 넣어서 먹으니 더 환상적이었다. 내 옆에 앉아 고수를 골라내던 조세핀은 고수를 한 움큼 집어 쌀국수에 넣는 나를 보고 경악하다가, "너 젓가락 진짜 잘 쓴다. 나는 아마 평생 다 못 먹을 것 같아!" 하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난 여행 내내 젓가락질 월드 챔피언 대우를 받았다.



하노이 기찻길 마을. 망고 스무디를 시켰는데 맛있었다. 사진에 한국 기업 L*의 실외기가 보인다.

마지막 목적지인 하노이 최고의 명소 기찻길 마을(Trần Phú)은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했다. 진짜 기차가 지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철로 옆이 전부 카페였다. 우리는 한 카페의 2층 테라스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카페 사장 아주머니는 저녁 8시에 기차가 지나가는데, 사실 매번 시간이 달라진다고 했다.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못 봐도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의자에 앉아있던 손님들을 철로 옆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하는 모습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분명히 기차가 온다는 신호였다.


카페 테라스에서 본 기차. 우리는 행운의 주인공이었다!

얼마 후 저 멀리서 하얀 불빛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달려온 기차가 코앞에서 마을을 지나갔다. 손대면 닿을 거리였다. 그 짧은 기억 하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짜릿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동화 같던 예상과는 정말 다른, 생각보다 찬란하지 않던 하노이가 문득 스쳐 지나가고는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건 아마 작은 조각들이 모여 결국에는 퍼즐을 완성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날, 집에서 2,800km 떨어진 곳에서 느낀 행복은 이렇게나 사소한 찰나 안에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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