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이 곧 브랜드의 격을 완성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봉준호 + 디테일) 이라는 별명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왠지 쪼잔한 사람인 것 같고 작은 것에만 신경 쓰는 사람으로 보일 것만 같다는 이유에서 말이죠. 이 별명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촬영하면서 얻었다고 합니다. 극중 반창고를 붙이는 장면에서 예전 반창고는 요즘과 달리 잘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번 손으로 만져 점착도를 조절하고 스타킹에 들어가는 돌의 사이즈와 형태까지 계산하는 것을 보고 미술감독은 ' 저 사람 혹시 이런 일을 실제 해본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정교한 디테일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데 기여한 것은 물론 관객들은 이런 디테일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고 합니다.
저도 브랜드 업무를 하면서 유명 브랜드일수록 예술가와 같이 아주 작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침저녁 화장품 용기를 여닫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아마 대다수는 뚜껑을 열거나 펌프를 누르는 일상의 행동에 특별한 인상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담당했던 해외 스킨케어 브랜드는 회사 내 제품 용기와 내용물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을 연구하는 '감촉연구소'가 별도로 있었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사람들은 화장품 용기를 만지고 여닫고 그리고 내용물을 피부에 바르면서 여러 가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감촉연구소에서는 용기의 그립감이나 개폐 시의 강도 또는 텍스처의 질감을 통해 소비자의 기분을 편안하게 하고 호감을 주는 그 특별한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사용하는 사람을 극진하게 대우하겠다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여기까지 신경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영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내세운 글로벌 뷰티 브랜드 업무를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의 핫 플레이스에 새로운 매장을 여는 오픈 행사에 기자단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행사를 며칠 앞두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방문해서 아연실색을 하며 이상태로는 매장을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매장 입구의 발매트 컬러가 전제적인 매장 콘셉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원들은 부랴부랴 지방에 있는 매트 제조사를 찾아가 겨우 오더 메이드로 아티스트가 요청한 사양의 발매트를 준비해서 무사히 행사를 치렀다고 합니다. 저와 친분이 있던 본사 담당자는 본인이 긴 머리 소유자이었다면 자신의 머리를 엮어 매트로 만들어 사람들이 밝고 지나가게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며 저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융통성 없는 단호함에 울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었을 테죠. 하지만 초대받은 입장에서 흠잡을 데 없이 근사한 매장 오프닝 행사였기에 저는 속으로 '역시 대단한 아티스트구나'라는 감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사소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작은 디테일에 이렇게 만전을 기하는 것이라면 제품에는 얼마나 완벽을 기해 진심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렇게 지나칠 정도의 집착과 타협하지 않는 끝없는 노력이 있어야만 소비자들의 높은 기대에 지속적으로 부흥할 수 있는 브랜드로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고객과 제품이 만나는 점같이 작은 그 모든 지점에 최선을 다하고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고객은 감동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브랜딩을 하면서 얼마나 작은 것까지 신경 써보셨나요? 내용물까지 좋게 느껴지는 패키지의 질감, 알아보기 쉽고 친절한 사용법 안내, CS 할 때의 기분 좋아지는 말투, 안심할 수 있는 배송 안내까지 브랜드의 전 여정에 조금만 더 신경 쓸 수 있다면 그 작은 배려가 쌓이고 쌓여 브랜드의 품격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