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어만큼 짧고 굵게 설렘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그래서 여행과 관련한 브랜드에서 행복, 즐거움,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브랜딩이 차별화를 위한 것이라면 행복, 즐거움, 경험만으로는 '브랜딩'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덕트의 본질, 그리고 고객 가치와 가장 가깝지만 너무나 '평범한' 여행의 가치를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에어비앤비는 이 고민을 한 줄로 정리한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전에 발행한 글에서 "브랜딩의 핵심은 존경심을 끌어내는 것"이라는 이준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말을 인용했는데, 나는 실제로 많은 브랜드가 환상을 팔아 존경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와 명예, 아름다움부터 반항, 건강, 안전과 같은 가치까지 말이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너무 현실과 거리감 있게 느껴진다면 '이상'으로도 대치할 수 있겠다.)
여행업은 대체로 일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환상을 판매한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5성급 호텔, 에메랄드빛 바다 같은 것들. 그 환상 속에는 일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드는 내가 없다. 노트북과 서류 대신 와인과 깨끗이 정리된 침구가 있고 가방을 들어줄 벨보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에어비앤비가 판매하는 환상은 조금 다르다. 이를테면 파리에 사는 친구네 집이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지인의 집에 초대받은 것 같은―실제로 내가 그런 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또 어떻게 하다 보면 가능할 것도 같은―환상을 판다.
일탈이 아니라 일상의 확장인 것이다.
Airbnb Experiences, 브랜드 핵심 가치를 경험하게 하다
에어비앤비가 판매하는 환상처럼, 런던에 나의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나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까? 혹은 나는 그 친구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이 상상은 에어비앤비의 또 다른 비즈니스인 '에어비앤비 익스페리언스(Airbnb Experiences)'를 통해 현실이 된다. 에어비앤비 익스페리언스는 현지 호스트가 운영하는 액티비티 프로그램인데, 일반적인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조금 더 개인적이고, 세분화된 관심사에 맞추기 쉽다.
예를 들면 현지인이 소개하는 숨은 맛집이나 명소를 가보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해리포터 덕후들과 함께하는 런던 투어, 현지 에이전시와 함께하는 브랜드 디자인 워크숍도 찾아볼 수 있다.
airbnb experience의 다양한 프로그램
Live and Work Anywhere,
낭만적으로 일하기
'Work and Life'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대체로 우리는 일과 (일상적인)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것은 여행에서 더욱 강조된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일상―특히 돈을 벌기 위해 썩 행복하지 않은 행위를 매일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다(live)는 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에어비앤비는 [Live and Work Anywhere]라는 브랜드 캠페인을 선보였다.
[Live and Work Anywhere]은 브랜딩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관점까지 고려한 캠페인이었다. 여행업에 큰 타격을 준 코로나 시기에 고객들의 이용 패턴(1개월 이상 장기 투숙객 증가)을 반영해 장기 숙박을 제안하고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장소를 이동/확대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이 캠페인을 통해 비즈니스 타깃을 확장하고, 연결과 소속감이라는 브랜드의 중요한 핵심 가치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사에 같은 이름의 리모트 워크 정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브랜딩과 비즈니스, 내부 브랜딩과 외부 브랜딩을 모두 결합한 캠페인인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브랜딩
에어비앤비의 브랜딩을 요약하면 '현실적인 환상' 정도가 되지 않을까. 두 단어를 나눠서 살펴보면 '실제로 존재하느냐'를 기준으로 양극단에 있는 단어들이라 말도 안 되는 문장처럼 보인다.
- 현실적: 현재 실제로 존재하거나 실현될 수 있는 것 - 환상: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하지만 실제로 에어비앤비가 보여주는 환상은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워 보인다. 맨발로 돌아다녀도 괜찮은 집, 친구네 집에 놀러 간 듯 호스트의 취향에 담긴 샴푸와 바디워시, 늦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정... 모험적이고 새롭기보다 일상적이고 평화롭다.
(출처: 에어비앤비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의 미션은 '누구든 어디에서든 소속감을 느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에어비앤비가 이토록 특별할 것 없는 이상, 현실적인 환상을 보여주는 것도 그 때문인 건 아닐까. 소속감이라는 것은 동질감을 기반으로 하는 것일 텐데 내 일상과 비슷한 모습의―하지만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을 갖춘―이상을 보여주고 그 속에 들어가고 싶게끔 하는 것 말이다.
현실적인 환상, 나의 어제와 비슷한 여행지에서의 오늘. 그것이 일상의 쉼표를 찍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에어비앤비를 택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