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실제로 말했는지와 상관없이, 이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SNS를 N잡,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보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SNS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는 가운데 조금 다른 길을 걷는 플랫폼이 있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곳, 브런치 스토리다.
아마존 플라이휠 (출처: https://alissonsol.blogspot.com/)
브런치, '선망'을 판매하다
아마존의 플라이휠을 보면 성장을 견인하는 첫 번째 선순환 구조는 '제품(Selection) → 고객 경험 → 트래픽 → 판매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콘텐츠 플랫폼으로 치환하면 '콘텐츠 → 고객 경험 → 트래픽 → 콘텐츠 생산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나 네이버 블로그 등 일반적인 콘텐츠 플랫폼은 이 구조를 충실하게 따른다. 더 많은 콘텐츠가 생산되고, 더 많은 콘텐츠 생산자가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지 않는다. 두 곳 모두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교육 과정을 제공하면서 더 많은 콘텐츠 생산자가,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브런치는 이 네 가지 축에서 특히 셀러, 즉 콘텐츠 생산자를 제한함으로써 콘텐츠를양적으로 늘리는 것을 대신 Selection(선발, 선정)을 강화한다. 브런치에서 Selection의 개념은 콘텐츠뿐만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에서부터 적용된다.
브런치의 세 가지 생존법
1) 선망의 대상이 된다
브런치의 가장 큰 특징은 콘텐츠 생산자(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브런치 진입 장벽을 높이면서, 동시에 브런치를 선망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구글의 예상 검색어만 보더라도 어떻게 하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유튜브, 각종 블로그에도 '브런치 승인 통과하는 방법', '브런치 n번만에 승인된 후기' 등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비법(!)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많다.
승인이라는 제약을 두면 희소성이 생긴다. 희소한 가치는 사람들의 선망을 얻을 수 있다.
플랫폼은 대체로 규모가 커지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것은 플랫폼의 성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콘텐츠 생산자의 수를 제한하면서, 즉 양적인 성장을 포기하더라도 사람들이 선망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브런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을 취한 것이 브런치가 처음은 아니다. 국내외에도 유사한 전략으로 성장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브런치처럼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티스토리 블로그'와 2020년 화제의 앱이었던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 '클럽하우스'다.
티스토리와 클럽하우스 모두 현재는 초대권을 통해야만 가입할 수 있다는 제약을 폐지했는데, 이는 비즈니스적 맥락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희소성이 컨셉이었을 뿐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 출판 플랫폼으로 브랜딩을 강화하고 리텐션을 높인다
아무리 힘들게 승인되었다고 해도 사용자(콘텐츠 제작자)의 이탈은 피할 수 없다.리텐션은 모든 비즈니스의 생존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데 콘텐츠 플랫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클럽하우스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데는 성공했으나 계속해서 사용할 만한 가치를 주지는 못했고,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서 희소성이라는 가치까지 사라졌다.
브런치는 '출판 플랫폼'으로포지셔닝하면서 브랜딩을 강화하는 한편 지속적인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브런치의 대표적인 콘텐츠인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영리한 마케팅이자 브랜딩 캠페인이다.
첫째, '작가가 되고 싶다', '책을 내고 싶다'라는 보편적인 욕망을 자극했다.
성인 연평균 독서량 3권.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권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이유는, 읽고 싶은 욕망보다 쓰고 싶은―책이 가진 권위를 가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는 '승인'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인정 욕구를 자극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 욕망을 실현하는―한 권의 책을 내는 데 성공하는―모습을 보여주면서출판 플랫폼이라는 브런치의 컨셉이 실체가 있다는 걸 증명한다.
둘째, 꾸준히 콘텐츠를 작성해야 출판에 도전할 수 있도록 허들을 두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가 신청 하기 위해서는 최소 10~30편의 글을 작성해야 한다. 이는 작가의 필력, 출판할 가치가 있는 내용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브런치의 리텐션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3)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본 디자인수준을 높인다
소설가 김중혁은 <디 에디트>에 "글쓰기는 절대 맥북으로 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요지는 맥북이 제공하는 인터페이스가 글에 비해 너무 아름다워 실제보다 잘 쓴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출처: 디 에디트)
브런치도 마찬가지다.모노톤의 심플한 디자인, 절묘한 자간과 줄간격. 모든 게 잘 짜인 판에 글을 얹기만 하면 된다.
네이버 블로그도 블로그 템플릿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에디터를 자칫 잘못 사용하면 꾸미기 실력이 뽀록(?) 날 수 있는데, 브런치의 에디터는 극도로 제한된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일관되고 안정적인 글쓰기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브런치의 UI/UX는 애플의 정책을 생각나게 한다. 자유도는 낮지만, 자유롭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환경이다.
브런치스토리의 브랜딩
숏폼의 시대, 롱폼 콘텐츠 플랫폼인 브런치는 어설프게 숏폼을 따라 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롱폼 콘텐츠로 보여줄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한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10년 후를 예측하기보다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브런치는 그 물음에 '지성을 향한 욕구'라고 답할 것이다.
힙하고 트렌디 하지 않은, 느리지만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글이라는 콘텐츠 형태,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지성과 인정을 향한 열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