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근무할 때, 나는 3교대 근무를 했다. 특히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이어지는 야간근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지친 몸과 허기를 안고 있었다. 내가 머물던 Ubi Ave의 아파트 1층에는 작은 mixed rice 식당이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백반집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늘 흰밥 한 공기를 담아주고, 그 앞에 줄지어 놓인 여러 가지 반찬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었다. 고기, 생선, 채소, 달걀요리까지, 선택한 반찬의 종류와 개수에 따라 가격이 정해졌다. 계산 방식은 단순했지만, 나 같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합리적이고 친근한 시스템이었다.야간근무를 마친 뒤, 나는 종종 이곳에서 밥과 반찬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나는 그 음식들의 이름을 거의 알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감으로만 반찬을 고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때때로는 입맛에 맞지 않는 낯선 맛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뜻밖에 맛있는 반찬을 골라 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다행이다!’ 하며 속으로 작은 환호를 외치곤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는 요령을 조금씩 익혀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식당 이모님과도 나름 친해졌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피곤에 절은 얼굴로 “굿모닝, 안띠!” 하고 인사를 건네면, 이모님은 늘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특유의 싱가포르식 억양을 섞어 말했다.
“노 굿모닝! 유 타이얼드 모닝! 유 나이트 시프트 어게인?! 타이얼드, 타이얼드, 아이요~”
거친 듯하지만 정겨운 그 어투 속에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그러곤 얼른 집에 가서 쉬라며 손짓으로 토닥여 주셨다. 그 짧은 순간들이 쌓여, 낯선 땅에서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덜 외롭고 덜 고단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그곳은 나에게 또 다른 마음의 안식처였다. 향수병으로 지쳐 있던 나를 위로해주던 따뜻한 밥 한 그릇, 그리고 “안띠”의 인사와 웃음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였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싱글리쉬를 배우기도 했고, 사람들과의 작은 대화를 통해 외국에서의 고단한 시간을 버틸 힘을 얻곤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즈음, 나는 친구들과의 헤어짐도 아쉬웠지만, 그 식당의 맛과 분위기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귀국 전 마지막으로 들른 날, 나는 이모님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띠, 아이 고 백 코리아 순.” 이모님은 순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세 아쉬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요~ 테이크 케어, 테이크 케어. 유 머스트 컴 백 어게인!”라고 말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 따뜻한 손길 속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날의 짧은 작별 인사는 내게 오래도록 남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싱가포르를 찾았을 때, 나는 그 mixed rice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뀌지 않은 간판을 보고 반가움이 밀려왔지만, 곧 낯선 공기가 나를 감쌌다. 그 좁은 식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모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밥을 받아들고 반찬을 고른 뒤 한입 먹었지만, 그 맛 또한 예전 같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음식 때문이 아니라, 나를 반겨주던 그 웃음과 인사가 더해져 만들어졌던 특별한 맛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따뜻하게 맞아주던 이모님은 없었고, 나는 혼자 밥을 다 먹고 조용히 자리를 떠야 했다. 마음 한켠이 허전 했지만, 동시에 그 시절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그곳이 내게 남긴 건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사람과 시간의 온기였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