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내 가방 속 어린이 놀이터가 문을 닫은 건 아니다. 언제나 달콤한 간식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고, 그중에서도 단연 반짝이는 보석 같은 두 개의 천하장사 소세지는 내 하루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누가 보면 피식 웃으며 “그걸 아직도 먹어?”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도 안다. 조금은 웃긴 거.
사실 나는 뭐든 쉽게 질려 하는 사람이다. 유행하는 디저트가 나오면 며칠은 열광하다가 또 금세 관심을 잃는 그런 성격인데, 이상하게 천하장사 소세지만은 질리질 않는다. 어릴 적부터 좋았고, 지금도 좋다. 그냥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내게 일종의 리듬이고, 안정감이고, 어쩌면 내 안의 어린 내가 아직도 조용히 손을 내밀고 있는 증거 같다.
나는 어릴 적 심부름에 꽤 진심이었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며 돈을 쥐여주면, 나는 자연스럽게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걸 사고 나면… 잔돈이 얼마 남지?’ 그리고 그 남은 돈으로 천하장사 소세지를 몇 개 살 수 있을지부터 따졌다. 심부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은 그 뒤에 숨은 소세지 예산이 진짜 목적이었다.
가게에 도착하면 후다닥 필요한 물건을 챙긴 뒤 곧장 천하장사 소세지 통을 찾았다. 그 안엔 소세지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전부 똑같은 비닐을 두르고 있었지만, 나는 항상 그중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골라내는 눈썰미가 있었다. 그래서 소세지를 몇 개씩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또 집었다가 놓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나는 누구보다 신중하고 진지했다. 그건 그냥 간식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선택이었다.
소세지를 고르고 나면, 진짜 중요한 순간은 그 다음부터 였다. 비닐 끝을 이로 꼭 문 다음, 한 손으로 비닐을 살살 당기면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소세지가 얼굴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별 소리도 안 나고, 가끔은 중간에서 끊겨버리기도 했다. 그럴 땐 괜히 입으로 다시 물고, 손톱으로 비닐을 벗기느라 온 신경을 다 써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번거롭게 벗기고도 나는 단 한 번도 귀찮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게 벗겨낸 소세지를 한 입 베어 물면 짭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건 단순히 '맛있다' 는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였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고민이 잠시 멈춘 듯했고,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더 가볍고, 더 빨리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소세지를 한 입씩 천천히 아껴 먹으며 걸었다. 심부름은 이미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입안 가득한 만족감과 손에 들린 봉지뿐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는 물건을 확인했고, 나는 들키지 않게 소세지 비닐을 슬쩍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하지만 엄마는 다 알고 있었고, 가끔은 “소세지 좀 그만 먹어라, 질리지도 않냐”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소세지를 못 사온 날이면 나보다 더 서운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반응까지, 이상하게 다 좋았던 기억이다.
사람들은 취향이 바뀐다고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이 소세지를 놓지 못한다. 가방 속에 늘 넣고 다니는 두 개의 천하장사 소세지는 이제 단순한 간식을 넘어서
내 일상 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작은 의식이 되었다.
지칠 때, 허기질 때, 마음이 조금 흔들릴 때 나는 무의식 처럼 가방을 열고, 그 익숙한 주황빛 포장을 꺼내 문다.
가격은 예전의 다섯 배가 넘고, 이젠 비닐도 손으로 조심스럽게 벗기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여전히 그 맛이다. 별건 없는데… 이상하게 든든하고, 그 순간 만큼은 어떤 어려운 일도 잠깐은 쉬어가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이 소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닐 것 같다. 늘 그렇듯 두 개. 하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심부름을 끝내고 돌아오는 중일 그 작은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