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뜨겁고 지친 올여름, 나는 예년과는 달리 삼계탕을 자주 찾았다. 사실 삼계탕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지금도 삼계탕을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차가운 음식보다 뜨겁고 진한 국물이 더 자주 생각났고, 그중에서도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것은 삼계탕이었다. 더위에 시원함만 좇던 나였기에, 뜨거운 국물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조금은 낯설고 신기했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삼계탕의 뽀얀 국물은 더위에 지친 내 몸을 달래는 동시에 마음까지도 은근히 데워주곤 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 뜨겁고 진한 국물을 떠먹는 순간에는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조용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무더운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나 삼계탕을 찾고 지금처럼 원동력으로 느끼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렸을 적 나에게 삼계탕은 느끼하고 부담스러운 음식에 가까웠다. 특히 삼계탕 속 삶아진 닭 껍질은 물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물컹한 식감은 나를 종종 울렁거리게 했으며 치킨과는 전혀 다른, 퍽퍽하고 건조한 살점은 마치 고무를 씹는 듯한 답답함을 주었고, 국물 속에 우러난 약재 향은 나에게는 향긋함보다는 낯설고 이질적인 맛이었다. 그렇기에 그때의 삼계탕은 내게 단순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일뿐,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했고 단지 어른들이 좋아하는 닭고기 국물 이라는 인상 외에는, 찾아 먹을 이유도, 좋아할 이유도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 하지 않았던가. 마냥 자극적인 음식만 좋아할 것 같던 내 입맛도 어느새 달라져, 삼계탕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맛의 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이 삼계탕을 한 숟가락 뜨며 내뱉던 깊은 탄식이 이제는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물컹거린다고만 여겼던 닭껍질의 부드러움은 국물의 진함과 어우러져 고소함을 더했고, 퍽퍽하다 생각했던 살점은 깊숙이 우러난 국물과 만나며 오히려 담백한 매력을 드러냈다. 약재 향 또한 낯설고 쓰디쓰게만 느껴지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온몸을 감싸는 듯 은은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처음 나 스스로 “삼계탕이 먹고싶다”라고 느껴졌을 때에는 괜스레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에 서운했다. 하지만 다양한 맛의 결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인생의 또 다른 기쁨을 배워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배부름과 자극적인 맛만을 좇았다면, 이제는 음식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향과 깊이를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계탕 한 그릇은 여전히 뜨겁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세월을 지나며 달라진 내 입맛과 삶의 경험이 함께 녹아 있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맛을 좋아하게 된 순간, 나는 단순히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조금은 넓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올여름 내가 삼계탕을 찾은 이유는 단순히 더위를 이겨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서 더위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고 맛의 새로운 의미를 더해주는 추억과 성숙이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