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수를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엄마표 간장국수. 하지만 내가 말하는 간장국수는 조금 다르다.
엄마는 지금은 웬만한 요리를 척척 해내는 수준급 요리사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요리에 영 소질이 없었다. 아마 예전에 내가 쓴 엄마의 계란말이 이야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그 시절 엄마의 요리 실력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엄마표 요리가 있었다. 바로 간장국수다. 잘 삶은 소면에 간장과 물을 조금 넣고, 참기름을 휙 둘러 비벼 먹는 단출한 음식. 그런데도 그 한 그릇이 어쩐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지금도 입맛이 없거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어김없이 그 국수가 생각난다. 한 젓가락 후루룩 삼키면, 어린 시절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엄마의 손맛이 함께 되살아나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는 간장국수를 점점 덜 해주셨다. 나 역시 크면서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 굳이 간장국수를 찾지 않았다. 그런데 독립을 하고 난 뒤부터는 이상하게 엄마표 간장국수가 자꾸 생각났다. 혼자 집에서 흉내를 내어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본가에 들를 때면 나는 어김없이 말했다.
“엄마, 간장국수 해줘.”
그러면 엄마는 늘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국수 하나 해 달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싶었다. 그런데 언젠가 엄마가 이렇게 물으셨다.
“오리야, 너 그게 그렇게 맛있어? 우리 그거 질리도록 먹었잖아.”
나는 의아해서 되물었다.
“엥? 우리가 그걸 그렇게 질리도록 먹었어?”
그러자 엄마는 살짝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우리 자양동 쪽방 살 때, 맨날 간장국수 아니면 간장밥만 먹었잖아. 그때는 그렇게 싫다고, 싫다고 했으면서..”
끝을 흐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에게는 없지만 엄마에게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겐 마냥 따뜻한 맛으로 각인된 간장국수가, 엄마에게는 절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했던 흔적이었고, 매일 똑같은 국수는 싫다며 반찬투정을 하던 어린 딸 앞에서 느껴야 했던 미안함과 비참함 이기도 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는 그저 ‘간장국수 맛있다’라고만 생각하며 추억의 음식이라 여겼던 음식이 엄마에게는 그 시절의 국수를 떠올릴 때마다 과거 엄마 혼자서 버텨내야 했던 생활고의 증거였고, 젊음을 깎아내던 현실의 무게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매번 “국수 먹기 싫어!”라며 투덜거리는 나를 바닥에 앉혀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상을 피고 국수를 내 앞에 밀어주었다. 사실 엄마 마음속은 미안함으로 쪼그라들고 있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 다른 반찬 하나, 고기 한 점 사주지 못한 채 매일 같은 국수만 내어놓는 현실이, 엄마에겐 얼마나 비참했을까.
나는 그저 지겨워서 내뱉은 투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한마디가 엄마의 가슴을 얼마나 깊게 후벼 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나의 투정은 한순간이었지만, 엄마에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투정마저 받아내며 꿋꿋하게 국수를 삶아냈던 엄마의 모습은 지금 내게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때의 엄마 나이를 훌쩍 넘어선 지금에서야, 나는 엄마가 그토록 나에게 해주기 싫어했던 간장국수가 왜 내겐 오히려 위로가 되었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엄마의 눈물과 애씀, 그리고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내 안 어딘가에 깊이 새겨져,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힘들고 지칠 때면 간장국수가 생각난다. 한 젓가락 삼키는 순간, 엄마가 내 곁에서 조용히 말해 주는 것만 같다.
“그래도 살아내야지. 어떻게든 버텨야지.”
어린 시절의 나를 살게 했던 한 그릇의 국수는, 이제 어른이 된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