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남북정상회담

by 아나스타시아

사실 이 부분에 있어 내가 과연 나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시켰는가에 대한 자신이 없어 이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나의 백수 데뷔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 번의 실수로 영혼이 박살나버렸기 때문에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할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1차 회담 이후에 벌어진 일이기도 한 데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동안 프레스센터에서의 경험은 정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동이 가득했던 터라 그 애착에 용기를 갖고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1차 정상회담은 시작 전부터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4차례에 걸친 프레스투어를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센터 구축 작업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하루에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초과근무를 하며 (주 52시간은 공무원이랑 공무원 노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센터 구축 작업과 행사 개막 작업을 준비했다.


나는 CIQ(남북출입사무소) 스튜디오 운영과 현장 진행 지원을 맡느라 프레스센터 현장에 있진 못했지만, 두 정상이 남북 경계선을 넘는 순간 프레스센터 안에서는 기자들이 기립박수를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새벽 여섯 시부터 두 시간 넘게 통일대교에서 대통령의 모터케이드가 지나가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다 복귀하는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지만 나 역시도 CIQ 스튜디오 운영과 현장지원이라는 포지션을 갖고 행사에 임하면서 행사 전부터 프레스투어 담당자로써, 또 운영 담당자로써 주어진 미션을 헤쳐나가는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회담은 하루여도 국제프레스센터는 보통 행사일 기준으로 앞뒤로 24시간을 운영하기 때문에 세팅 전부터 시작해 4박 5일 같은 회담을 끝내고 마셨던 맥주는 술을 못하는 나에게도 꿀맛이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앞서 얘기했듯 나는 능지처참을 당해야 하는 걸 과장님이 살려놓으신 터라 해외언론비서관님과의 1주일간의 한 사무실에서의 업무는 정말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더군다나 과장님은 왜 하필 전문가 인터뷰 리에종 담당자로 나를 지정하셔서 일주일 내내 비서관님 앞에서 영어를 하게 만드신 건지 야속하기만 했다.)


결국 지금은 엉망진창이 된 남북관계지만 어쨌든 역사적인 순간에 나에게 미션이 주어졌고, 그걸 해낸다는 것. 그 자체가 지금도 너무 영광스럽고 벅찬 일이라 나도 모르게 자랑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순간이 되었다.


일은 나에게 허례허식 일지 모르겠지만 자존감을 높여주는 자랑임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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