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다온이는 커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콩아, 맘마 먹어. 맘마.”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다. 누나의 부름에도 바로 달려갈 수가 없다. 즐거웠던 산책길은 언제부턴가 조금만 걸어도 버겁기 그지없다.
“우리 콩이 왜 그래? 맛이 없어? 누나가 간식 만들어줄까?”
“누나가 주는 밥은 맛있어. 다만 배가 아프고 힘이 없을 뿐이야. 걱정시켜서 미안해 누나.”
할 수 있는 거라곤 짖을 수 있는 것 밖에 없어 열심히 눈빛을 보냈지만 누나는 내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 콩이가 슬퍼 보이지 않아?”
오히려 작은 다온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콩아 내일 누나랑 다온이랑 같이 병원 가자. 그럼 콩이 금방 다시 밥도 먹고 산책도 갈 수 있을 거야.”
“백내장에, 직장암이네요.”
“네?”
“열한 살이면 그래도 열심히 잘 커줬네요. 조금씩 준비를 하셔야…….”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길게 한 달 정도 보시면 될 듯합니다.”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 누나도 엄마가 되면서 강해진 걸까? 예전이라면 병원만 오면 엉엉 울었던 누나인데 이젠 아무 말 없이 한 손엔 다온이를 한 손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가 울지 않아 다행이다.
“어떻게 됐어?”
형이 돌아왔다. 마중 나가지 못해 미안해 형. 몸을 일으킬 힘이 나질 않는다. 아까 의사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가 이 얘기였을까?
“다온이 자면.”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이제 새끼 강아지 시절 파란 조명으로 하루를 열던 예전의 기억이 점점 흐릿해진다. 깜깜해진 바깥이 하루의 끝을 알려준다. 햇살 같은 누나를 만나고 달빛 같은 형을 만나 내 삶은 변했다.
누나를 만나고 형을 만나고 다온이를 만나며 엄마에 대한 기억도 흐려졌다. 누나와 함께 걸었던 기억, 하루 종일 바빠 집에 없던 누나를 시무룩하게 기다렸던 기억, 누나와 가족과의 기억으로 내 머릿속은 뒤덮여있다.
차근차근 옛날을 되짚던 그때,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분명 또 누나일 거야. 형이 누나를 울린 걸까? 어휴. 또 누나를 달래기 위해 내 인형을 물고 누나에게로 간다. 그러자 이번에는 형이 말없이 나를 안아 올려 쓰다듬는다. 눈물은 누나가 흘리고 있는데 왜 나를 쓰다듬어 주는 걸까?
생각해보면 누나도, 형도 다온이가 생기기 전까진 항상 내가 먼저였다. 하지만 이제 다온이가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인 것은 당연하다. 나조차 어린 다온이가 제일 먼저니까.
하지만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내 누나. 콩이의 누나인걸. 형은 왜 누나를 울리는 걸까? 이럴 때 보면 형도 참 바보 같다. 누나를 웃게 만드는 덴 장난감이 최고인데.
점점 밥이 먹기 싫어진다. 배도 아프고 눈앞도 보이지 않아 어차피 먹기도 힘이 든다. 무엇보다 슬픈 건 누나도, 형도, 다온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내 밥엔 전에 없던 약 냄새가 섞여 있고, 눈을 떠보면 갑자기 병원이기도 하다. 눈을 떴을 때마다 누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누나를 슬프게 하는 걸까? 내가 아픈 게 누나를 슬프게 하는 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준 누나를 눈물짓게 할 순 없다. 차라리 내가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간다면. 그러면 누나가 울지 않을까? 다온아 형아 대신 누나 곁에서 웃음을 주렴. 누나, 형. 더 이상 내 걱정으로 마음 상하게 하지 않을게. 조금만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