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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jera 비아헤라 Aug 24. 2024

[치앙마이 여행] 예술과 크리에이티브의 도시

Sabai Sabai

  이른 아침에 눈을 떴지만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뒹굴거리다가 11시에 나섰다. 오늘의 첫 일정인 반캉왓을 가기 위해 그랩을 부르려다가 길 아래에 썽태우가 있길래 가격을 물어봤다. 승객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가는 거라 비싸긴 했지만 그랩보다는 싸서 썽태우에 올라탔다. 기사님이 출발하러 운전석으로 가지 않고 말을 걸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핸드폰을 받더니 사진사에 빙의된 듯 썽태우를 탄 모습을 열심히 찍어주셨다. 사진 찍히는 걸 어색해하지만 친절한 기사님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포즈를 열심히 취해드렸다. 만족한 기사님은 운전석에 올라타고 10인승 썽태우를 독점하게 된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반캉왓으로 출발했다.

  


  반캉왓은 치앙마이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만든 예술인 공동체 마을이다. 제각기 다른 품목의 공예품을 파는 작은 공방과 소품샵들이 줄지어있어서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을 구경하고 카메라에 잔뜩 담아냈다. 한편에 있는 야외 공방에는 공방에 소속되어 작품 활동을 하는 건지, 원데이 클래스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자아이 두 명이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도자기 위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작은 아트빌리지 반캉왓강아지조차 수공예 꽃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아침도 안 먹고 많이 걸었더니 허기가 져 근처'아디락 피자'라는 화덕피자 가게에 가서 QR코드로 페스토 리코타를 주문했다. 화덕피자가 맛이 없는 게 어렵기도 하고, 구글맵 평점이 좋아서 맛이 괜찮겠거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루꼴라도 신선하고 혼자 먹는 게 아까울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치앙마이 평균 물가에 비해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반캉왓을 왔다면 꼭 들러 먹어봄직하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동네구경도 할 겸 왓 우몽까지 걸어갔다. 조용하고 카페만 몇 개 있는 작은 동네이지만 길을 걷다 마주치는 풍경들이 이국적이면서도 정다웠다.



  왓 우몽은 도이수텝 산에 있는 동굴사원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암자처럼 산아래 덩그러니 동굴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부지가 크고 숲길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푸드덕푸드덕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나타난 닭 두 마리가 꾁꾁거리면서 요란하게 싸워댔다. 내 옆으로 잽싸게 뛰어다니며 쫓고 쫓기는 닭들을 황당하게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갈림길에서 갑자기 보살님이 나타나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저 닭들은 맨날 싸우는데 왜 싸우는지 이유를 아냐고 물어보시길래 암수가 사랑싸움을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보살님은 빙긋 웃으면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수탉들이 싸우는 거라고 설명을 해줬다. 닭들은 어느새 숲 속으로 사라지고 짧은 영어로 두런두런 태국보살님과 대화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사원에 도착했다.

 


  이 사원은 란나왕국의 왕이 명상을 위해 산기슭에 터널을 파 지은 사원으로 현재 명상센터를 운영하는 등 명상 장소로 유명하며, 일요일 오후에는 영어 법회도 열린다. 이번에는 반캉왓을 왔다가 근처에 있으니 아무런 정보 없이 둘러보고만 갔지만, 다음에 치앙마이를 오게 되면 며칠간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고 싶다. 들어가는 길에 강아지가 바닥에 다소곳이 쓰러져 있길래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잠든 것 같았다. 무더위 속에 체력을 아껴 체온을 유지하려고 길 한가운 데서 지쳐 잠들었나 보다.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가까이 와서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땡볕에 등이 뜨거웠는지 사원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는 몸을 뒤집어 벌러덩 배를 까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자는 게 확실하다. 동남아를 처음 가는 사람들은 한낮 길거리 한복판에 동물들이 드러누워 있어도 놀라지 않길 바란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인공호수가 있어 산책을 하며 잠시 머리를 식히고 그곳에서 또 잠든 강아지를 만났다. 나무 그늘 아래 주인이 깔아준 듯한 포근한 방석 위에 누워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강아지를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호수처럼 반짝이며 잔잔해졌다. 그러다 문득 벌써 일요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절반의 시간이 촛불 심지 타버리듯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팔을 휘둘러 풀풀 날리는 재라도 기어이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상이 이리 여유롭고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싶다가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내 성정에 기어코 또  욕심을 부리겠지? 그러니 이렇게 여행이라도 자주 와야겠다'라고 미적지근한 결론을 내렸다.



  왓 우몽에서 내려와서 근처에 있는 '페이퍼 스푼' 카페로 이동했다. 2층에 있는 명당자리는 이미 다른 여행자가 차지하고 있어서, 창살뷰이지만 나름 포레스트뷰 좌석에 앉아서 책도 읽고 일기도 썼다. 여유롭게 기다리다가 명당자리로 옮겨서 시간을 더 보내려고 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소란스러워 그랩을 타고 올드시티 근처에 있는 TCDC로 이동했다.



  TCDC는 Thailand Creative&Design Center의 약자로 방콕과 치앙마이에 있는 디자인 센터이다. 1층은 전시관, 2층은 회원제 도서관으로 많은 예술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주말 동안 예술행사가 있는지 입구부터 행사 포토존과 장식들이 붙여져 있고 야외 광장에서 미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 멤버십 가입을 하고 1일 이용권을 구입해서 들어갔다. 각종 예술자료가 비치된 서가와 패브릭 전시를 구경하고 열람석에 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꺼내 읽었다. 미술관이 배경인데 책에 그림자료가 실려있지 않은데, 마침 아트도서관에 왔으니 이곳에 보유하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관련 도서를 찾아서 함께 봤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보다가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여행하며 창작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될 거라고. 그럼 가장 먼저 치앙마이로 와 TCDC 연회원권을 끊을 거라고...



   선데이 마켓이 열릴 시간이 돼서 TCDC를 나와 타페게이트 쪽으로 걸었다. 타페게이트는 올드시티의 대표 성문답게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일요 야시장 선데이 마켓은 타패 게이트에서 왓 프라씽까지 무려 1km가 넘는 치앙마이 최대 야시장이다. 직선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골목 사이사이까지 온갖 공예품과 음식들로 가득하고, 더 가득한 건 사람들이었다. 초반에는 신나게 거리의 악사도 구경하고 골목골목 구경하면서 코끼리 문양 란나스타일 카메라 스트랩도 샀다.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골목은 물론 쇼핑도 포기하고 지친 몸으로 숙소방향으로 직진해서 걸었는데, 해가 질수록 인파가 점점 더 몰리는 통에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언제나처럼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높은 인구밀도에 지치고 어지러워 숙소로 빨리 들어갔다.



  짐을 풀고 잠시 한숨 돌리고 숙소 앞까지 이어진 푸드트럭에서 팟타이를 사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내일은 꼭 마사지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낮에 만난 길거리 강아지처럼 피곤에 지쳐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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